사회적 약자를 돕는 웨어러블 헬스케어 디바이스

[테크월드=이건한 기자] 요즘은 많은 웨어러블 기기가 헬스케어 기능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수년 전 스마트폰의 등장과 함께 웨어러블 기기가 새롭게 주목받던 시기엔 단순히 입는 기기, 스마트폰과 연결되는 기기 이외에 웨어러블 디바이스의 정체성이나 필요성은 분명치 않았다. 하지만 웨어러블의 특성, 웨어러블이 잘 할 수 있는 부분에 집중하게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특히 신체 데이터를 수집하거나 신체 활동을 보조하는 측면에서 웨어러블 디바이스는 높은 가치를 만들어 낸다. 웨어러블 헬스케어에 대한 시장 전망도 밝은 편이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지난 2017년 발간된 IITP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세계 웨어러블 시장의 전체 규모는 약 850억 달러다. 이 중 헬스케어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240억 달러로, 단일 항목 중에서는 디바이스 연결 기능과 더불어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손목 위 스마트폰'을 지향했던 초기 웨어러블 디바이스

유니버설 디자인의 가치를 실현하는 웨어러블 헬스케어

웨어러블 헬스케어 시장의 지속적인 미래 성장이 기대되는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웨어러블로 실현 가능한 독특한 가치에서도 찾을 수 있다. 바로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으로 부르는 평등함의 가치 실현이다. 건강한 사람도 웨어러블 헬스케어 서비스를 통해 보다 오래 건강함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노약자나 기타 신체적 장애를 지닌 사람들에게는 특히 이들이 평범한 사람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 도움이 필요한 부분에서 웨어러블 디바이스가 큰 역할을 하고 있는 사례들이 있다. 

 

모두에게 이동의 자유를, ‘메디코넥스’

IoT 기반 스타트업 메디코넥스(Medi Conex)의 ‘오렌지 밴드’는 손목에 착용하는 스마트밴드다. 치매노인을 위한 안전·건강관리 서비스를 제공한다. 주로 요양병원이나 주거단지 주변 가로등 같은 시설물에 양방향 통신이 가능한 게이트웨이를 설치한 뒤, 이를 치매노인의 오렌지 밴드와 연동하면 착용자의 건강 상태를 체크하거나 안전지역 이탈 여부를 확인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

메디코넥스는 오렌지 밴드를 통해 ‘안전한 이동의 자유’란 가치를 실현하려고 한다. 인지 능력이 떨어지는 치매 환자라고 항상 좁은 병동에 갇혀 있거나 24시간 감시의 눈길 속에서 행동에 제약을 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환자를 감시하고 통제하는 것은 보호자 입장에서도 많은 물적, 심적 고통이 따르는 일이기도 하다.

메디코넥스 오렌지 밴드

이런 면에서 치매 환자들도 이질감 없이 착용할 수 있는 오렌지 밴드와 블루투스, Wi-Fi, Sigfox, LoRa 등 다양한 통신 기술을 활용한 배회 방지 시스템의 결합은 환자와 보호자 모두에게 더 많은 행동의 자유를 부여한다. 보호자가 치매노인을 더 이상 밀착 감시하지 않더라도 지정된 안전 범위 안에서 환자는 자유롭게 산책이나 외부 활동을 할 수 있으며, 이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신체활동 증가로 인한 인지 능력 개선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다. 

만일 환자가 지정 위치를 이탈하거나 급작스러운 신체적 이상을 겪는 경우에는 센서가 이를 관리 시스템으로 즉각 전송하기 때문에 관리자의 빠른 대처가 가능하다. 또 관리자 한 명이 평시에 담당할 수 있는 환자의 수도 늘어 전체적인 관리 비용이 줄어든다. 메디코넥스의 이 시스템과 서비스는 현재 성남 YMCA 은학의 집에 시범 사업으로 선정돼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메디코넥스 치매노인 배회 방지 서비스 개요

현재 메디코넥스는 SKT의 인공지능 스피커 ‘누구(NUGU)’와 연계해 보호자가 원격에서도 피보호자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AI 기반 시니어 안심서비스를 개발하고 있으며, 오렌지 밴드 기반의 웨어러블 헬스케어 서비스를 확대하기 위한 여러 노력을 기울이는 중이다. 

메디코넥스의 김태평 대표는 “이런 형태의 서비스가 고도화되면, 장기적으로는 요양병원이 아닌 거주지나 동네 단위에서 환자 개개인이 지역 사회와 함께 생활하며 치료와 자유로운 삶을 병행하는 ‘커뮤니티 헬스케어’ 개념이 일상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람은 누구나 보다 인간적인 환경에서 행복한 방식으로 자신의 건강을 지킬 권리가 있고, 웨어러블과 IoT 기술이 이를 실현해줄 것이란 이야기다.

또 커뮤니티 헬스케어가 널리 정착될 경우, 정부 입장에서도 노인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며 급증하고 있는 요양병원에 대한 건강보험 재정을 절감할 수 있어 사회적인 윈-윈(Win-Win)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모두에게 보행의 자유를, ‘엔젤로보틱스’

꼭 노인이 아니라도 선천적인 병이나 사고로 인한 후천적인 장애 등, 세상엔 여러 이유로 신체적 제약을 갖게 된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중요한 건 이들이 정신마저 불편한 것은 아니다. 그저 외부의 조력을 조금만 받는다면, 다른 젊은 청년들이나 비장애인들처럼 똑같은 일상의 자유를 누리며 살 수 있는 사람들이다. 

스타트업 엔젤로보틱스(Angel Robotics)는 신체적 제약을 지닌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돕기 위한 외골격 슈트를 만든다. 외골격 슈트는 웨어러블 로봇의 한 갈래로, 인체공학적 설계와 각종 센서, 전동 모터 등을 이용해 근육의 움직임을 보조하거나 구조적으로 지지해주는 역할을 한다.

초기엔 전장 내 군인의 전투력을 향상하거나 제조산업 현장에서 노동자의 노동력을 보조하기 위한 수단으로 많이 개발돼 왔지만, 이와 달리 엔젤로보틱스의 ‘엔젤 슈트’와 ‘워크온 슈트’는 웨어러블 로봇 기술이 신체적 부자유를 겪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자유를 선물할 수 있다는 믿음 아래 개발된 외골격 슈트다.

먼저 엔젤 슈트는 ‘일상생활용 맞춤형 로봇보행보조기’를 지향한다. 기본적으로 어린이부터 노인, 보행 장애를 가진 환자 등 모두가 실제 일상에서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경량화와 무저항 구동기 고도화에 집중했다. 신발에는 내딛는 걸음의 폭과 방향 등을 감지하는 센서를 탑재했으며, 허리 근처에 내장된 센서들은 현재 보행 상태를 분석하고 사용자가 가장 자연스러운 형태로 걸을 수 있도록 알고리즘을 최적화되는 데 도움을 준다.

엔젤로보틱스 엔젤슈트

특히 외골격 슈트를 착용하는 것 자체가 사용자에게 ‘남들과 다름’의 기준이 되는 시선을 최소화하고자, 디자인에도 신경 썼다. 보통 무겁고 투박하며 검은색 일색이라고 상상하기 쉬운 일반 보행용 외골격 슈트와 달리 엔젤 슈트는 하얗고 미끈하게 뻗은 보행 보조 액세서리의 느낌이 강하다. 또한 체구가 작은 어린이도 쉽게 다룰 수 있도록 상대적으로 가벼운 편이다. (9.5kg). 

한 예로, 이분척추층이란 척추 기형 장애를 지닌 12살 박채이양은 혼자서 보행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올해 엔젤 슈트 임상 실험자로 선정되며, 엔젤 슈트에 적응하는 얼마 간의 훈련을 거친 끝에 지난 3월에는 가족과 함께 미국 애리조나주의 사막 지대로 여행을 떠났을 만큼의 달라진 삶을 살 수 있게된 사례가 있다. 

엔젤슈트를 착용한 박채이 양 (사진=엔젤로보틱스)

또 다른 제품인 워크온 슈트는 보행 자체가 불가능한 하지 완전마비 장애인들이 걸을 수 있도록 만드는 제품이다. 엔젤 슈트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센서를 통해 착용자에게 최적화된 보행 방식을 제공하며, 특수 목발에 부착된 버튼으로 걸음 운동을 조정한다. 또한 단순히 걷기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착용한 채로 앞을 보고 안전하게 보행할 수 있도록 걸음 상태와 조작에 관련된 대부분의 정보를 AR 안경으로 사용자에게 제공해 안전성을 높였다. 게다가 앉기, 서기, 계단 오르내리기, 경사 오르내리기 등 일상에 필요한 거의 모든 보행을 지원한다.

아예 걷기를 포기해왔던 하지 마비 장애인들에게 워크온 슈트 같은 웨어러블 기기의 도움을 받아 휠체어 없이 스스로 걷을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꿈만 같은 일이다. 하지만 이는 현실이됐다.

워크온 슈트의 임상실험자인 김병욱 씨는 올해 사이보그 올림픽으로 불리는 ‘사이배슬론(Cybathlon) 2020’에서 6개 코스를 안정적인 기록으로 통과하며 외골격 로봇 부문에서 3위를 차지했다. 이는 하지 마비 장애인의 일상 복귀 가능성을 입증한 중요한 사례다. 엔젤로보틱스의 창업자인 KAIST 공경철 교수 역시 “웨어러블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기술”이라고 말하곤 한다.

아래는 김병웅 씨가 지난 2016년 사이배슬론에 참가해 워크온 슈트를 입고 여러 코스를 통과하는 영상이다. 

 

웨어러블 헬스케어의 종착지는 원격의료

웨어러블 헬스케어 기술은 단순히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많은 사람에게 더 나은 삶의 가치를 선사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리고 이후 미래 웨어러블 헬스케어 기술이 나아갈 방향 중 하나로 꼽히는 것 중에는 웨어러블을 통한 원격의료(Telemedicine) 서비스가 있다.

의사와 대면하지 않고 비대면으로 진단이나 처방을 받는 원격의료는 기본적으로 웨어러블 헬스케어가 지향하는 바와 같이 더 많은 환자가 더 편리하게 접근성 높은 의료 서비스를 받도록 하는 것에 의미를 둔다. 그중 원격의료와 웨어러블이 접점을 지닌 영역은 ‘원격 환자 모니터링’이다.

이는 웨어러블 디바이스로 단순히 심박수나 심전도를 측정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수집된 의료 데이터를 병원의 전자의무기록(EMR) 시스템과 실시간 연동시키게 되는 서비스다. 이 경우 환자가 병원에 방문하지 않아도 의사는 전달받은 환자의 데이터를 토대로 이상 여부를 파악해 미리 주의를 주거나, 내원 필요성을 판단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된다.

원격의료 모니터링을 통해 보다 세밀한 건강 관리가 가능해진다

또한 사용자의 의료 데이터가 시스템상에서 주기적으로 분석되므로 병원 방문 시에만 측정되는 일회성 데이터보다 훨씬 객관적인 건강 변화 추이를 확인할 수 있게 된다. 병원 입장에서도 환자 진단에 대한 정확성을 높일 수 있고, 치료 연구를 위한 참고 데이터를 추가로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다만 국내에서 이런 서비스는 아직까지 구현할 수 없다. 물론 아직까지 헬스케어용 웨어러블 디바이스의 종류가 한정적이고 수집할 수 있는 데이터도 적지만, 의류/패치형 등 점점 다양한 웨어러블 기기가 등장하고 있는 만큼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 자체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법과 사회적 합의다. 

 

기술은 ‘충분’, 사회는 ‘아직’  

세계적인 흐름으로 볼 때, 현재 미국이나 중국을 비롯해 넓은 국토 대비 상대적으로 의료 서비스가 낙후된 국가에서는 열악한 의료 서비스 개선을 위해 모니터링을 포함한 여러 원격의료 서비스 보급에 적극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의사와 환자 간의 원격진료를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는 나라다.

이 문제는 한국의 의료 접근성이 매우 뛰어나 원격의료에 대한 수요 자체가 높지 않다는 점, 정부의 단일 의료보험 시스템으로 인해 의료 수가가 매우 낮은 국내 의료 시장의 현실이, 만일 원격의료를 허용했을 때 현행 의료 체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른다고 여기는 의사 단체의 반발 등과 어우러져 쉽게 해법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의료계 일각에서는 진료가 아닌 모니터링 정도는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기술 수준과는 별개로 이 부분에 대한 논의는 매우 첨예한 대립을 이어가는 중이다. 

그러나 의학은 본질적으로 사람을 살리고 더 건강하게 만드는 학문이다. 원격의료 서비스만 해도 실제 적용 시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국민의 수가 절대적으로 많다는 사실을 부정할 순 없다. 아마 앞으로도 지속적인 문제 제기와 사회적 합의, 세밀한 법적 보완을 통해 가급적 많은 사람이 편리한 의료 혜택을 누리고 의사들 역시 더 많은 수익 창출의 기회가 될 수 있도록 조정해 나가야 할 것이다. 

나아가 사회적 합의와 진보를 통해 모두가 더 사람답게, 건강하게 살기 위한 웨어러블의 참된 가치가 실현될 수 있도록 다함께 노력해야 한다.

 

- 이 글은 테크월드가 발행하는 월간<EMBEDDED> 2019년 12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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