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TC 고봉수 전무가 바라보는 산업용 AR의 현재와 미래

[테크월드=이건한 기자] 증강현실(AR)은 ‘핫’했다. 만화에서나 보던 피카츄를 거리로 불러들인 게임 ‘포켓몬 고’는 AR을 대중에 널리 알렸다. 그 광풍에 힘입어 비슷한 게임과 AR을 이용한 각종 실험적 콘텐츠가 우후죽순 등장하기 시작했다. 네이버는 웹툰에 AR을 접목한 증강현실 만화 ‘마주쳤다’로 신선한 반향을 얻기도 했다. 2017년의 이야기다.

그러나 불과 2년이 흐른 2019년 AR의 인기는 예전 같지 않다. 재미는 있는데 왠지 오래 즐기고 싶은 매력은 떨어진다. 대중은 더 이상 잠깐의 ‘AR 눈요기’를 위해 카메라를 실행하고 세상을 스캔하는 등의 번거로움을 즐기지도 않는다. 요즘 AR이라고 하면 주로 패션이나 인테리어, 카메라 앱처럼 잠깐 사용하고 마는 기능성 서비스에서 주로 활용되는 이유다. 

반면, AR이 여전히 ‘핫’한 영역도 있다. 바로 산업 현장이다. 산업용 증강현실(IAR, Industrial AR)은 일반 소비자용 AR과 달리 연속적이다. 기능성과 ‘현실의 확장’이라는 AR 본연의 가치에 충실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현장이다. 이곳에서 AR은 제품 설계부터 판매와 서비스에 이르는 전체 사이클에 관여하며 지속적이고 유의미한 변화를 끌어낸다.

보잉은 항공기 날개 조립과정에 AR을 도입해 품질을 90% 향상하고 조립 시간을 30% 단축했다. 산업용 AR 부문의 연평균 성장률이 2025년까지 매년 160%를 넘을 것이라는 보고서도 있다. 과연 AR은 어떻게 산업 현장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이뤄내고 있는 걸까? 그리고 그것은 지속 가능한 것일까? PTC 코리아의 기술총괄본부장 고봉수 전무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고봉수 전무는 서울대 컴퓨터공학과에서 석사를 마치고 마이크로소프, SAP, 오라클 등을 거쳐 2017년부터 PTC의 기술총괄본부장을 맡고 있다.

PTC 코리아 기술총괄본부장 고봉수 전무

Q. AR이 제조 산업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자세한 이유가 궁금하다.

AR과 산업을 매핑하기 전, 먼저 기업의 제조 사이클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보통 제조사들이 물건만 만든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내부를 자세히 설계, 제조, 판매, 서비스, 교육, 운영에 이르는 6단계 라이프 사이클을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AR은 각 단계에 드는 시간과 비용, 안전성을 크게 개선해준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예를 들어보자. 자동차 산업에서는 불과 3~4년 전까지도 도면의 디자인 오류를 확인하기 위해 관련 프로토타입을 3D 프린터로 깎아 확인하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이를 실사 수준의 AR로 대체해 설계와 이후 단계에 따라올 수 있는 오류를 미리 확인하는 과정이 훨씬 수월해졌다.

현장 근로자의 안전과 작업 효율도 향상된다. 미국의 한 공장에서는 작업자가 위험한 설비 앞에서 직접 조작하는 대신 지근거리에서 AR로 구현된 가상의 기기(디지털 트윈)를 조작함으로써 사고 발생률을 크게 낮추고 있다. 국내 LS산전, 삼성 같은 대기업에서는 작업 과정을 순차적으로 안내하고 확인할 수 있는 AR 매뉴얼을 도입해 작업자들이 간과하기 쉬운 실수에 대한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고 있기도 하다.

자료=PTC

Q. 산업용 AR은 연결성 면에서도 뛰어나다고 들었다.

그렇다. 특히 OT(제조 운영기술)와 IT(정보 기술)의 융합이라는 측면에서 그렇다. AR을 도입하지 않은 제조 현장에서는 기기에 이상이 발생하면 전화로 상황을 설명하거나, 보고 후 지시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는 과정이 필요하다. 반면 현장에 AR을 도입하는 경우 문제 상황을 전문가와 함께 실시간으로 공유하며 즉석에서 기술지원을 받을 수 있다.

가령 LG화학의 폴란드 공장에서 문제가 발생해도 오창에 있는 본사 인력이 화상회의 같은 번거로운 작업을 거치지 않고 빠르게 문제 해결에 대한 지시를 내려줄 수 있다는 말이다. 분리돼 있던 현장과 사무의 시각이 유기적으로 공유되며 전반적인 기업 구조도 개선된다.

 

Q. 제조 현장 밖에서는 어떤 이점이 있을까?

예전에는 매장에 세탁기를 사러 가면 판매사원의 ‘말로 하는 설명’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AR을 통해 세탁기가 작동하는 모습이나 내부 구조 같이 보이지 않던 것들을 현장에서 한층 생동감 있는 형태로 소비자에게 보여줄 수 있게 됐다. 즉 향상된 ‘제품 경험’을 통해 소비자들의 손쉬운 의사결정을 돕는다는 측면에서 판매와 서비스의 질이 크게 개선되는 셈이다.

AR을 이용한 세탁기 구동 시연 (출처=유튜브 ‘jason you‘)

Q. 확실히 기업 입장에선 구미가 당길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 같다.

그렇긴 하지만 제조 기업, 특히 국내 기업들의 경우 무언가를 새로 도입할 땐 무엇보다 TCO(총소유비용)에 민감하다. AR에서 이런 사례나 시나리오를 꾸준히 발굴하는 이유도 기업이 AR을 보다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기업 입장에서는 신기술을 도입해 비용을 절감하거나, 사고 발생률을 낮추거나, 오류율을 단 0.002%라도 개선하는 등의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있어야만 의사결정에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PTC의 경우 기술만 제공하는 게 아니라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TCO나 가치, 사례 등에 대해 전반적인 컨설팅을 함께 제공함으로써 AR 비즈니스가 보다 빠르게 확산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Q. AR을 도입하는 기업들이 주의해야 할 점은 무엇이 있을까?

우선 실무에서의 현실성을 확보하고 AR 시스템이 전시 수준에 머물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현장에 도입되는 AR 솔루션들은 당사자들의 실제 작업 환경과 업무 사이클에 최적화돼야 한다. 현장에 필요한 AR 시스템을 임원단에서만 결정하게 되면 정작 현업에서의 작업 현실성은 떨어지는 문제가 발생하는데, 이 부분에 대해 PTC는 ‘뷰포리아 스튜디오’ 같은 드래그 앤 드롭 기반의 AR 제작 솔루션을 제공해 해결하고 있다.

AR 코어 기술 비숙련자라도 반나절 정도의 교육만 거치면 자신들에게 필요한 최적화된 AR 작업 환경을 직접 커스터마이징 할 수 있다. 이런 서비스가 있으면 기업 입장에서도 AR 도입과 자체 솔루션 개발을 위해 필요한 고급 인력의 수요가 줄어 부담을 덜 수 있다.

PTC 뷰포리아 스튜디오

Q. 현재 산업용 AR이 당면한 문제점은 무엇인가?

AR 외적으로 통신과 하드웨어 문제를 이야기해보고 싶다. AR 기반 시스템의 경우 초당 100MB에서 많게는 300MB까지 데이터를 전송 받아야 하는 경우가 있다. 이를 LTE만으론 원활하게 사용하기 어렵다. 만약 카메라를 댔는데 결과물 출력이 3초에서 10초까지 걸린다면 당연히 문제가 된다. 이런 통신 지연에서의 허들을 5G가 해결해 줄 필요가 있고, 하드웨어의 사용성도 차차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산업 현장에서 사용되는 AR 장비는 스마트폰이 아닌, 양손이 자유로운 글래스(Glass) 형식이다. 이 글래스도 홀로렌즈 같은 하이 퀄리티(High Quality) 글래스와 구글 글래스 같은 로우 퀄리티(Low Quality) 글래스로 나눌 수 있는데, 아직은 각각 한계가 있다.

홀로렌즈를 예로 들면, 착용 시 다소 무겁고 시야각이 상당히 제한된다. 그래서 실제 홀로렌즈를 착용한 뒤에는 사고 예방을 위해 크게 움직이지 않는 것이 좋다. 또 스마트폰으로 볼 수 있는 화면을 눈앞에서 다 볼 수 있다는 건 장점이지만 이를 온전히 활용하려면 배터리가 충분히 받쳐줘야 한다. 현장 작업자가 기기를 안정적으로 활용하려면 적어도 배터리가 하루는 버텨줘야 하지만, 현재 홀로렌즈의 1회 작동 시간은 약 2시간으로 다소 아쉬운 수준이다.

로우 퀄리티 글래스들은 착용이 편하고 작업 중 이동이 자유롭다는 부분이 장점이다. 반면 시야에 둘 수 있는 정보의 양이 극히 제한적이라 업무적으로 큰 보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극단적으로 얘기하면 “이걸 굳이 봐야 할 필요가 있나?”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다행히 앞서 열거한 문제들은 하나씩 해결되고 있는 문제들이다. KT의 경우 글래스와 스마트폰을 연결해 AR 정보와 사용 시간을 둘 다 확보하려는 식의 시도를 선보이기도 했다.

 

Q. 그렇다면 앞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은 무엇일까?

지금까지는 많은 기업이 주로 AR킷이나 카메라 등 AR 구현을 위한 코어 기술 개발에 주력해왔다. 하지만 현장에서 AR이 지금보다 확산되려면 이를 활용한 응용 애플리케이션들이 더 많이 나오고 더 쉽게 만들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즉, 기본 기술보단 바로 사용할 수 있는 서비스가 많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PTC가 뷰포리아 스튜디오 외에도 뷰포리아 초크(Chalk)나, 엑스퍼드 캡처(Expert Capture) 같은 솔루션을 함께 준비한 이유도 접근성과 사용성을 높이기 위함이다. 실제로 초크와 캡처 서비스는 고객이 계약을 마치면 별도의 개발 없이 그다음 날부터 바로 사용할 수 있다.

PTC 뷰포리아 엑스퍼트 캡처

Q. 마치 지금은 우리가 스마트폰 확장 앱을 장터에서 내려받아 쓰는 게 익숙하고 당연해진 것처럼 말인가?

그렇다. AR이라는 기술이 들어가긴 했지만, AR이 ‘특수화된 전문 기술’이 아니라 계약을 통해 바로 사용할 수 있는 서비스의 개념으로 변화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돌아보면 지난 IT 패러다임이 모두 그랬다. 자바나 클라우드를 생각해보라. 이들 기술이 처음 등장했을 당시만 해도 관련 기술의 전문가들이 꼭 필요했다. 그러나 지금은 이들 대부분이 서비스화(SaaS)됐다. 마찬가지로 AR도 기존 한계들이 하나씩 해소되고 기업 간 생태계가 확산되는 과정에서 점차 진입 장벽이 낮아진 서비스형 기술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참고로 PTC는 AR에 대한 투자를 다른 글로벌 기업들보다 일찍 시작한 편이다. 덕분에 현재 시장 점유율이 높고 PTC AR 기술로 만들어진 애플리케이션도 전 세계에 6만 개가 넘는다. 그렇다 보니 PTC는 이제 기술보다 그다음 단계에 대한 고민이 더 깊을 수밖에 없다. AR이 키워드가 아닌, 서비스가 키워드인 AR이 필요한 시기다.

 

Q. ‘AR as a Service’라니 흥미로운 이야기다. 미래 기술 측면에서는 어떤 견해를 갖고 있는가?

기술은 많은 이들이 예상하듯 인공지능(AI)과 AR의 결합이 화두가 될 것이다. 특히 인식 기술의 측면에서 발전이 기대된다. 지금까진 AR 객체 인식에 QR 코드나 사진 같은 어떤 마크가 필요했다면, AI가 적용된 AR은 카메라로 비추기만 해도 AI가 전체 사물을 인지하고 그것이 무엇인지 결정해 적절한 액션을 취할 수 있는 형태로 진화할 것이다.

Q. 사실 우리가 흔히 듣는 건 대부분 성공 사례다. 하지만 그 뒤엔 분명 실패한 사례도 있었을 것이다. 주로 어떤 경우에 성공하고 실패했는지 들어보고 싶다.

당연히 우리도 여러 고객 사례를 통해 성공과 실패에 대한 데이터를 학습하고 있다. 이에 미뤄 얘기하자면, 성공률이 높은 경우는 대부분 라이브 데이터와 연동되는 서비스다. 제조 현장에서도 단순한 정적 컨텐츠가 아닌 설비 현황이라든가 상태 정보, 사용자 인터랙션에 따라 변화할 수 있는 컨텐츠가 주로 성공한다. 보잉이나 캐터필러 같은 업체들이 엔진 정비와 조립 등에 실시간으로 작동하는 AR 시스템을 도입해 긍정적인 효과를 보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실패하는 경우는 정확히 반대의 경우다. 한 번 만들고 그대로 끝나버리는 정적인 콘텐츠가 그렇다. AR 매뉴얼이나 교육 콘텐츠 같은 부분이 아무래도 단독으로는 메리트가 조금 떨어진다. 투자한 비용에 비해 몇 번 보면 더 이상 안보는 콘텐츠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 때문에 PTC의 경우도 AR 매뉴얼 사업을 많이 진행하고 있지만 우리가 이것을 직접 만들어주는 것보단, 고객이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직접 만들 수 있는 아이디어와 편리한 구현 환경을 만들어 주는 쪽에 집중하고 있다. 기업이 시간이 흐른 뒤에도 이를 스스로 개선할 수 있도록 말이다. 결국 정적인 AR에 지속성을 부여해주는 구조인 셈이다.

 

- 이 글은 테크월드가 발행하는 월간 <EMBEDDED> 2019년 9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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