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패시터의 구조와 종류, 그리고 차세대 기술까지
[테크월드=선연수 기자]
반도체는 그 작은 칩 속에 데이터를 어떻게 저장하는 것일까? 메모리 반도체를 구성하는 메모리 셀은 1개의 트랜지스터와 1개의 커패시터로 구성되며, 이는 1비트의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다. 이때 커패시터의 전하 여부로 데이터가 0인지, 1인지 구분된다. 반도체의 데이터를 구성하는 커패시터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자.
전기를 내 맘대로, 라이젠병
‘Capacitor’은 용량을 의미하는 ‘Capacity’에서 파생된 말로 커패시터가 전기를 저장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커패시터의 시초는 1745년 독일의 E. G. 클라이스트가, 1745~1746년에 네덜란드 라이덴 대학의 물리학자 P. 반 뮈셴브루크가 각기 독자 개발한 ‘라이덴병(Leyden jar)’이다. 이는 유리병 안팎으로 금속박을 붙이고, 금속 막대에 사슬을 연결해 병안으로 넣어, 사슬과 밑면이 접촉하도록 구성된다. 병 안쪽 전압은 3만 5000V까지 상승할 수 있으며 병에 넣은 금속 막대를 통해 방전되는 방식으로 사람이 의도적으로 전기를 저장, 방전할 수 있다는 데 의미가 있었다. 이후 전기적 실험에서 꾸준히 활용됐다[그림 1].
커패시터의 작동 원리
커패시터는 일시적으로 전기를 저장하는 장치다. 일반적으로 2개의 도체판, 그 사이에 유전체가 위치하는 구조을 가진다[그림 2]. 도체판은 금속으로 이뤄져 전하 이동이 자유롭지만, 유전체는 절연 물질로서 전기적으로 대전은 되나, 전하가 통과할 수는 없다.
커패시터에 연결단자를 통해 전압을 걸어주면, 외부로부터의 전압과 전기적 평형을 맞추기 위해 전하가 이동하게 된다[그림 3]. 닫힌 회로에서 그림 상 왼쪽 도체판에서 전자가 회로를 타고 오른쪽 도체판으로 계속적으로 이동해 도체와 유전체의 경계면 가까이 전하가 축적되며, 외부 전압과의 전위차가 평형을 이루면 더 이상 전자의 이동도 없으며 전기가 통하지 않는 상태가 된다. 흐르는 전류는 공기중으로 방전되며, 커패시터는 전기적으로 완충된 상태를 띈다. 이처럼 완충된 경우는 디지털 신호 1, 그렇지 않은 경우엔 0을 나타낸다. 회로가 끊어져도 커패시터에 저장된 전기 에너지는 일시적으로 유지돼 용량이 큰 커패시터는 일시적인 배터리 역할을 하기도 한다.
만약 교류가 아닌 직류를 사용하면 이같은 효과를 얻을 수 없다. 커패시터는 전압과 전류의 변화에 반응해, 직류가 회로를 통해 들어오는 순간 증가하는 전압량으로 잠시 전기가 통할 수는 있으나 유전체의 분극을 유발할 정도로 오랜 시간이 아니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전기를 전달할 수 없다.
전자 회로의 ‘믿는 구석’, 커패시터의 기능
작동 원리에서 알 수 있듯, 커패시터는 에너지를 일시적으로 저장할 수 있다. 따라 집적 회로(Integrated Circuit, 이하 IC) 내 부하 전류가 급증할 경우, 커패시터가 축적하고 있던 전기를 IC에 공급함으로써 전원 라인 전압을 일정하게 유지함으로써 IC의 오작동을 막아준다[그림 4]. 또한, 전압이 급변하더라도 회로를 통해 도체판 간 전자 이동에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기기에 과전압이나 저전압을 공급하지 않고 서서히 변화한다. 따라 안정성이 요구되는 기기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커패시터는 교류를 잘 통과시키며, 특히 주파수가 높은 교류를 잘 흘려보낸다. 회로 상의 대부분의 노이즈가 높은 주파수의 교류 전류들로서, 이런 노이즈는 오디오의 경우 잡음을 일으키며, 심각할 경우 고장에 이르게 만든다. 커패시터를 사용해 고주파의 노이즈를 외부로 방출해낼 수 있다.
유전체에 따른 커패시터 분류
커패시터는 유전체, 형태, 기능, 전압 등 분류 방식이 다양하다. 회로 상에서의 효율에 유전체의 영향이 커 이를 분류의 기준으로 삼는 경우가 일반적이다[그림 5].
세라믹 커패시터
유전율이 큰 세라믹 박막이나 티탄산 바륨 등의 유전체를 사용한 커패시터다. 크기와 용량이 작은 편이며 납작한 형태로 휴대폰과 같은 소형 기기에 많이 사용된다. 열에 강하고 고주파를 잘 흐르게 해 고주파 필터로서 전파 간섭 방지용으로 많이 활용되며, 주로 적층형 구조가 많아 MLCC(Multi Layer Ceramic Capacitor)라고 부르기도 한다.
‘전자산업의 쌀’로 불리는 MLCC는 일반 세라믹 캐패시터와 다른 형태를 가진다[그림 6]. 이는 반도체에 전기를 균일하고 안정적으로 공급함으로써 기기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유전체와 내부 전극이 몇 백 겹씩 번갈아가며 쌓인 구조를 가지며, 층수로 커패시터의 사이즈를 조절해 최종 기기를 더욱 얇게 제작할 수 있다. 스마트폰에는 약 1000개의 MLCC가 들어가며, 차량에는 3000~1만 5000개까지 탑재된다. 개별 크기는 머리카락 굵기인 0.3mm 수준이다.
필름 커패시터
폴리프로필렌, 폴리 에틸렌, 폴리 스티렌 등의 플라스틱 필름 유전체를 사용하는 커패시터로 이 필름 양면에 금속박을 댄 후 원통형으로 감싼 형태를 띤다. 이 역시 크기가 작아 소형 기기에 사용하기 적합하나 유전체와 전극 모두 얇은 형태로 구성되기 때문에 절연이 잘 이뤄지지 않을 수 있으며, 정밀도 또한 높지 않은 편이다. 필름의 종류에 따라 주파수에 대한 성능 차이를 가진다.
전해 커패시터
얇은 산화막을 유전체로, 알루미늄을 전극으로 사용하는 커패시터로, 부피에 비해 큰 용량을 가진다. 전극이 구분돼있어 반대로 연결하거나 고전압의 경우 커패시터가 파손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주로 전자기기의 전원 장치 안정화, 저주파를 흘려보내 회로 상 노이즈를 줄여주는 저주파 바이패스 등의 용도로 사용된다. 누설 전류가 많고 고주파 처리에는 잘 사용하지 않는다.
탄탈륨 커패시터
전해질 액을 유전체로, 탄탈륨(Tantalum) 합금을 전극으로 사용하는 커패시터며, 탄탈륨 가루(Powder)를 굳혔을 때 발생하는 틈을 활용하는 구조를 가진다. 알루미늄 전극을 사용하는 전해 커패시터보다 전류 손실이 적고 보다 안정적이다. 극성이 정해져있으며, 이 또한 연결 시 커패시터 표면에 기입된 극성에 맞게 사용해야 한다.
이외에도 운모(Mica)를 유전체로 하는 마이카 커패시터도 있으며, 앞서 설명한 필름 커패시터 중에는 폴리에스테르 필름을 사용하는 경우 마일러 커패시터라고 따로 명칭 하는 등 그 종류가 다양하다. 형태로 분류하면 권취형 커패시터, 원통형 커패시터, 사각형 커패시터, 원판형 커패시터, 칩 커패시터, 적층형 커패시터, 관통형 커패시터 등으로 나눌 수 있으며, 전압의 크기에 따라 도체판에 모이는 전자의 양이 달라지기 때문에 전압에 따라 분류하기도 한다.
배터리 대체재, 슈퍼 커패시터
앞서 소개한 커패시터들은 수많은 특성을 가지지만, 공통점은 크기도 용량도 모두 ‘작다’는 것이다. 일시적인 배터리 역할이나 노이즈 주파수를 차단하는 것을 넘어, 커패시터의 전하 저장 능력을 대폭 늘린 슈퍼 커패시터, 일명 울트라 커패시터로 불리는 기술이 개발됐다.
먼저 슈퍼커패시터는 일반 커패시터보다 단위 부피 또는 질량당 10~100배 더 많은 에너지를 저장한다[그림 7]. 또한, 더 빠른 속도로 충전되며 무수히 반복되는 충·방전 사이클에도 무리 없이 작동한다. 리튬 이온과 같은 배터리 대비 크기가 작고, 충·방전 사이클 허용 횟수가 매우 높아 수명 또한 길어, 전기자동차의 배터리 보완품이나 대체재로 주목받고 있다. 올 초 테슬라가 울트라 커패시터를 제작하는 맥스웰을 인수했으며, 맥스웰도 현재 국내외 자동차 제조업체들과 협업하고 있어 향후 친환경차를 위한 기술로 더욱 기대되는 상황이다.
슈퍼커패시터는 일반적으로 활성탄소 표면에 전하를 흡·탈착해 순간적으로 다량의 전기에너지를 저장하고, 높은 전류를 공급한다. 낮은 내부 저항으로 인해 빠른 충·방전을 지원한다. 이를 이용해 부하 응답이 느린 풍력 발전과 같은 신재생 에너지 발전에 적용해, 전력과 부하 전력 간 차이를 흡수 또는 방출함으로써 균일한 전력 품질을 유지하는데 활용된다. 또한, 시동을 걸거나 급가속할 때의 순간적인 고출력 전압이 요구될 때 에너지를 제공하는 역할로도 쓰인다. 현재 열차, 크레인, 엘리베이터와 같은 급속 충·방전이 필요한 기기에 사용되고 있으며, 전기차나 하이브리드차의 비상 전원용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기존 2차 전지에 비해 반영구적인 수명을 가지며, 충전 속도 또한 약 100배 빠른 슈퍼 커패시터는 아쉽게도 에너지 저장 밀도가 낮다. 기존 전지 대비 10배 정도 낮으며 이를 개선하기 위한 연구가 지속되고 있다.
지난 2017년 광주과학기술원 장재형 교수 연구팀은 기존 대비 2~3배 높은 에너지 저장밀도를 갖는 기술을 개발했으며, 2018년 말에는 성균관대 화학공학과 박호석 교수팀과 미국 드렉셀대 유리 고고치 교수 공동 연구팀이 2차원 전극 신물질 ‘멕센(MXene)’을 활용해 기존 대비 약 1000배가량 작은 슈퍼 커패시터 기술을 개발했다.
긴 수명과 작은 크기로 인해 친환경차 측면에서도 폐기물 발생량이 줄어 의미가 있다. 그러나 아직은 기존 전지만큼의 효율을 내기 위해선 이보다 큰 슈퍼커패시터가 필요한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