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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관을 씌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딜 수 있게 하라VR과 AR의 창조적 결합, 융합현실(Merged Reality) ③
정환용 기자 | 승인 2018.06.12 14:47

[EPNC=정환용 기자] TV 드라마의 부제로 더 잘 알려진 제목의 원래 문장은,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란 문구다. 이는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의 희곡 ‘헨리 4세’에서 권력에 집착하는 헨리 4세를 빗대 쓴 문구 ‘Uneasy lies the head that wears a crown.’의 번역문이다. 문장의 전후를 감안하면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지만, 막강한 권력을 가지려면 그에 걸맞은 책임도 함께 져야 한다는 의미로 보면 된다.

VR과 AR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기술을 소비자가 체감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상용화가 눈앞에 다가와 있다는 뜻이다. 과거 PC방이 우후죽순처럼 생기던 때보다는 덜하지만, VR 체험존은 테마파크를 비롯해 전국 각지에 200여 곳이 생겼고, 그 숫자는 천천히 늘고 있다. HMD를 착용하고 체험용 콘텐츠를 즐기거나 탑승형 기기를 타고 롤러코스터 등의 테마파크 어트랙션을 체험하는 등, 충분치 않지만 VR 관련 콘텐츠도 조금씩 많아지는 추세다.

하지만, 아직 제대로 활성화되지 않은 산업이다 보니 여기저기서 잡음이 생기고 있다. HMD를 착용하면 기본적으로 모든 시야를 HMD의 디스플레이가 가리게 되고, 사용자는 시각적으로 주변 정보를 알 수 없게 된다. 기본적으로 VR 기기의 사용자 인식 범위는 25㎡ 정도인데, 실내 VR 체험존의 1인 이용 공간은 이보다 약간 좁다. 한 명이 이용하는 공간에 두세 명의 친구들이 함께 있는 경우가 많다. 시각과 청각을 자극하는 콘텐츠를 체험하다 보면 바닥에 넘어지기도 하고, 컨트롤러를 휘두르다가 예기치 않은 사고가 생기기도 한다.

PC방의 경우 꾸준한 관련 규제 개선이 이뤄졌지만, 아직 VR방은 관련 규제가 제대로 정착되지 않아 PC방의 규제를 기준으로 삼고 있다. 이는 PC방과 VR방의 시스템 상의 차이로 충돌하는 부분이 적잖이 발생해, VR 사업 관계자들이 확산·보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관련 규제뿐 아니라 관련 협회가 국내 시장을 견인하는 역할 역시 기대에 미치지 못하며, VR 시스템의 개발과 공급이 기술 내외적 요인으로 난항을 겪고 있다.

Part 3. 왕관을 씌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딜 수 있게 하라

시장 규모, 예측의 절반에 못 미쳐
모바일 VR과 달리 고성능 PC VR, 게임 콘솔 VR의 높은 가격 또한 진입 장벽을 높이는 요인이다. 시장조사기관 디지캐피탈(Digi Capital)은 2016년 VR 시장 매출을 38억 달러로 예측했다가, 나중에는 약 30%를 낮춘 28억 달러로 정정했다. 골드만삭스 역시 같은 해 시장 규모를 22억 달러로 예측했다. 그러나 2016년 VR 시장의 매출은 18억 달러 정도였다. 디지캐피탈은 2020년 예상치도 당초 1485억 달러에서 300억 달러로, 뒤이어 250억 달러로 대폭 낮췄지만, 2년여 뒤의 VR 시장이 2016년보다 10배 이상 성장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는 국내외 사정이 마찬가지다. 각종 시장조사 기관이나 연구소들은 VR과 AR 산업이 오는 2020년에는 500~1000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며 ‘점’을 치고 있지만, 정작 AR 산업은 제대로 된 시장 매출 통계조차 이뤄지지 않을 만큼 미미하다. 국내는 특히 AR 관련 하드웨어 개발은 없다시피 하고, 소프트웨어 매출은 그 규모를 산출하는 의미가 없을 정도다. 가상의 세계를 현실에 가져올 수 있는 방법은 생각보다 그 허들이 높아, 아직은 시장 규모를 논할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 중론이다.

 

한국가상증강현실산업협회
“제작·이용 안전 가이드라인 만들겠다”

지난 4월 30일, 상암동 누리꿈스퀘어에서 한국가상증강현실산업협회(Korea VR AR Industry
Association, 이하 KoVRA)가 제작하고 있는 VR과 AR의 제작, 이용에 대한 안전 가이드라인 관련 2차 공청회를 열었다. 현재 VR 기기 관련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프랜차이즈, 하드웨어·소프트웨어 개발사 등 다양한 업계 관계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KoVRA 관계자는 “오는 2019년 약 1000여 VR 체험존이 구축될 것으로 예측한다”며, 사업자와 개발자 간에 합의된 사항을 가지고 가이드라인을 구축하려 한다고 말했다.

공청회에 참가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이종혁 사무관은 KoVRA가 제정하려 하는 가이드라인이 규제는 아니라며 VR 체험시설 구축 가이드라인에 대해 소개했다. KoVRA 정우채 사무국장은 “사업자와 개발자 간에 합의된 사항만을 가지고 제작과 제공 관련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뒤이어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손욱호 책임을 좌장으로 관련 토론이 진행됐다. 패널에는 롯데월드 이정중 파트장, VR플러스 김재헌 대표, 3D팩토리 정사교 연구소장 등이 참여했다. 손욱호 책임은 토론에 앞서 “현재 VR 체험존을 찾는 사람들 중 2번 이상 방문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한 번 체험해 보고 마는 것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하고 싶게 만드는 콘텐츠가 부족하다. 이에 대한 개선이 시급하다”고 언급했다. VR의 이용과 제작 관련 가이드라인을 소개하기 위한 공청회에서 콘텐츠의 부족을 언급한 것부터 어긋난 토론이었다. 지속적으로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부족한 것은 바이브, 리프트 등 VR 기기가 출시된 이후 꾸준히 제기됐던 문제고, 전용기기를 사용하는 PS VR 역시 절대적인 콘텐츠 부족으로 하드웨어가 남아도는 것이 현실이다. 이용에 있어서의 안전, 그리고 더 나은 콘텐츠 제작 환경을 구축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에 대한 공청회에서는 언급할 필요가 없는 내용이었다.

협회가 제시하는 가이드라인에 대해선 패널을 포함한 대부분의 참가자가 실효성에 대한 우려를 드러냈다. 이정중 파트장은 “어린아이가 VR을 이용할 때의 주의사항이나 영향 등을 감안한 이용 기준과 수칙을 제정하는 것은 당연히 필요하다. 350평 이상의 대형 공간에 대한 구조적 개선도 필요하다”며, “그러나 시설의 인증에 대해선 지속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안전한 운영에 대한 인증은 있어야 하지만, 내부의 콘텐츠 인증은 해당 콘텐츠 제공자와 콘텐츠를 이용하는 사업자 중 누가 받아야 하는지 명확히 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쓰리디팩토리의 정사교 연구소장은 “일례로 VR을 사용하며 컨트롤러를 휘두르다가, 같은 공간에 있던 친구와 부딪혀 이가 부러진 적이 있다”며 시설의 안전성에 대한 인증은 찬성했다. 하지만 VR방을 찾는 사람들이 이용하는 콘텐츠는 대부분 한 번쯤 해보는 일회성 게임이 대부분이어서 지속성이 없다며, 가이드라인에 포함된 콘텐츠 등급 심의에 대한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VR플러스의 김재헌 대표 역시 “스팀(Steam, 온라인 게임 플랫폼)에 등록된 수천 개의 VR 콘텐츠를 이용하려면 사업자가 전부 인증을 받아야 하는데, 이것이 누구를 위한 정책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현재 국내에 사업을 전개하고 있는 VR 관련 프랜차이즈가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다고 역설했다. 사업장에서 제공하는 콘텐츠를 사용한 데 대한 사용료를 내라는 내용증명을 비롯해 콘텐츠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도 말했다.

VR플러스는 지속적으로 약 40여 개의 자체제작 콘텐츠를 공급했지만, 전국의 VR플러스 가맹점들은 VR방을 운영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란 수치라며 수급을 거부하고 있다. 김 대표는 “지금의 규제 내에서도 양질의 콘텐츠를 공급하기 어려운데, 여기에 협회의 가이드라인이 더해지는 것이 누구에게 도움이 되는지 의문”이라며 불만을 표했다.

 

VR·AR 이용 및 제작 안전 가이드라인
KoVRA는 VR 콘텐츠 이용이 사용자 눈의 피로, 멀미 등과 같은 불편함을 유발할 수 있다며, 이것이 VR 시장의 성장 전망과 반하는 허들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협회는 HMD, 디스플레이, 5G 통신기술 등 관련 기술이 발전하며 B2C 시장에서의 새로운 시장 창출이 전망된다며, VR 시장과 생태계의 안정적인 정착을 위해 이용자의 안전성을 확보하고, 고품질의 콘텐츠 제작을 위한 산업계 활용 가이드라인이 마련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가이드라인의 구성은 VR 콘텐츠 이용자 관련 6개 항목, 제작자 관련 13개 항목으로 이뤄져 있다. 이용자 관련 항목은 ▲연령 ▲이용시간 ▲VR 이용환경 ▲AR 이용환경 ▲위생관리 ▲기기 발열 등으로 구성돼 있고, 제작자 관련 항목은 ▲지연율(Latency) ▲프레임(Frame Rate) 카메라 움직임 ▲리그 구성 ▲스티칭 최적화 ▲시야각(Field of View, FOV) 조정 ▲감각불일치 동기화 ▲모션플랫폼 동기화 ▲UI 배치 ▲사운드 ▲스테레오스코픽 3D 최적화 ▲해상도 최적화 ▲수직 동기화 설정 ▲영상 복잡도 최적화 ▲임상 프로토콜 ▲증강현실 등이다.

협회는 VR 이용 안전성에 대한 표준 콘텐츠 제작 가이드라인을 전파해 VR 산업의 활성화와 세계 시장 개척을 위한 기반을 조성하겠다고 했다. VR 제작 가이드라인 또한 VR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고 VR 애플리케이션의 유통을 활성화하겠다는 취지를 담았다. 사실상 기본적인 콘텐츠 제작과 관련 시설물 이용에 대한 표준을 제시하겠다는 것이 요점이다.

 

기관마다 요구사항 제각각, 협회가 중심 잡아줘야
VR 시뮬레이터를 제작하고 있는 모 업체의 대표가 마이크를 잡고, 모 방송국에 자체 개발한 제품과 콘텐츠를 납품할 때 벌어진 일을 설명했다. 방송국에서 해당 기기에 대한 규격 인증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들은 그는, 먼저 납품을 진행한 뒤 인증을 받기 위해 협회의 가이드라인에 맞춰 게임물등급위원회(이하 게등위)에 인증을 신청했다. 그러나 게임물등급위원회는 콘텐츠관리위원회(이하 콘관위)에 보내라며 바통을 넘겼고, 콘관위는 ‘이 콘텐츠는 시뮬레이터와 연동되는 것이니 우리 소관이 아니’라며 다시 게등위로 심사를 떠넘겼다.

모 대표는 이에 대해 “문화체육부, 과기정통부, 협회, 위원회 등 기관들이 요구하는 사항이 전부 다르다. 가이드라인이나 인증보다 이런 혼란을 먼저 정리해야 하지 않나 싶다”고 언급했다. 현재 KoVRA가 제시하고 있는 제작과 이용 관련 가이드라인이 관련업계 종사자들에게 현실적으로 와 닿지 않는다는 단적인 발언이었다.

제작 가이드라인의 첫 번째 항목인 ‘지연율 최적화’를 보면 이 가이드라인의 허술함을 한 번에 알 수 있다. 산·학·연 의견을 수렴했다며 이런저런 정보를 제시하는 가이드라인은, 결국 구체적인 방법 없이 ‘지연율 측정 소프트웨어를 사용해 20ms 이하를 유지해야 한다는 점, 그리고 향후 VR 하드웨어·소프트웨어를 만들 대 지연율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해야 한다는 일반론뿐이다. 심지어 하부 항목으로 ‘현재의 헤드트래킹 기술로 20ms 이하를 달성하는 것은 어렵다’고 명시했는데, 삼성의 모바일 VR 기기를 제외한 3대 VR 기기의 지연율은 모두 20ms 아래였다.

현재의 VR, AR 산업은 기계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더 나은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모델을 개발하는 것이 먼저다. 가이드라인에서도 수차례 ‘현재 기술로는 어렵다’는 뉘앙스가 실려 있다. 그런데도 행정적인 절차의 간소화나 통일성을 앞세우기보다 기술적인 부분에 대한 기준점을 세우려는 것은 욕심으로밖에 비치지 않는다. 기술 개발과는 몇 걸음 떨어져 있는 협회가 개발 관련 기준을 제시하는 것에 대한 실효성은, 현업에 종사하고 있는 관계자들부터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무분별한 인증서 장사는 ‘X’
협회가 제안하는 가이드라인에는 이용 안정성 평가와 콘텐츠 인증 프로세스가 포함돼 있다. 여기에는 검증 체크리스트와 검증 방법을 포함해 평가 관련 항목들이 나열돼 있다. 또한, 국내 표준 선정을 위해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Telecommunication Technology Association, TTA)에 HMD 영상 기반의 VR 콘텐츠의 제작기술 관련 기준을 HMD, 콘텐츠, 사용자, 구동 환경 등의 관점에서 제작 지침 형태로 기술하는 국내 표준안을 소개하고 있다. 이는 지난 2017년 12월 열린 제92차 TTA 정보통신표준총회에서 우수표준 표창을 받았다는 것도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자료집의 해당 내용 다음 페이지에는 인증 완료에 대한 인증서와 인증마크 예시가 제시돼 있었다.

이는 전형적인 ‘인증서 장사’로 볼 수 있다. 국가에서 모든 산업에 관여할 수는 없는 실정이니, 운전면허나 전문기술 이외의 산업은 공인된 전문기관에 인증과 면허를 대신 허가해줄 수 있게 한다. 하지만 국내에 하드웨어 제조사는 거의 없고 콘텐츠 제작사도 많지 않은 현재 시점에서, VR 관련 협회 중 한 곳에서 이런 공식 인증을 진행하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와 비슷한 사례로, 2008년 신고 절차가 간소화된 민간자격증은 지금까지 3만 개가 넘게 난무하고 있다. 이 중 제대로 공인받은 자격증은 100여 개로, 0.5%도 채 못 된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에서 제공하는 민간자격 정보서비스에서 ‘드론’을 검색해 보면, 2018년 5월 현재 총 202개의 관련 민간자격증이 등록돼 있지만, 공인된 드론 관련 자격증은 1건도 없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현재 수십여 단체나 협회에서 교육과 발행을 겸하고 있는 드론 조종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이, 해당 단체 이외에 누구에게 도움이 되는지는 자명하다.

가이드라인이란 이름에 가린 협회의 인증제도 도입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 이전 기술과의 경계가 명확한 새로운 기술이란 부분에서 더욱 힘이 실리는 의견은, VR 시장 체제에서 불필요한 중간 유통업체가 소위 유통마진을 노리고 들어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해외 시장에서는 제작과 관련된 규제보다는 용어를 통일하고 시장 자체를 현재의 IT 시장에 잡음 없이 편입시키기 위한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 그런데 국내에서는 각종 협회와 관련부처에서 새로운 산업에 대한 규제가 개선되지 않고 있으며, 기존의 법률을 저마다 나름의 해석을 도입해 향후 충돌의 여지를 계속해서 남기고 있다.

산업의 발전은 시장 규모의 확장이 아니라 더 나은 기술의 개발에서 시작된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국내 IT 산업이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핵심 기술에 대한 연구·개발과 투자 없이 서비스만을 내세우는 것은 의미가 없다. 협회는 개발에 걸림돌이 될 수 있는 불필요한 규제를 개선하고, 관련 산업 종사자들이 기술적인 부분 이외에 다른 문제에 시달리지 않도록 도와주는 것이 본연의 임무이자 존립의 이유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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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환용 기자  hyjeong@epn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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