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능형 전력망 시스템, 스마트 그리드 ①

[테크월드=정환용 기자] 생명의 진화는 효율에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생물의 진화에 대해 많은 이론이 있지만, 수천만 년 동안 그 생명에 직결되는 과제를 해결하며 지금에 다다른 생명체는 가장 효율적으로 생존을 유지하기 위한 진화를 거듭해 왔다. 인간의 손가락이 5개인 것도 그렇고, 손바닥의 주름과 손가락 끝의 지문 역시 같은 맥락으로 진화해 온 결과이자 과정이다.

선사시대 이전부터 사용을 시작한 화석연료는, 현재까지 전 세계의 불을 켜는 가장 보편적인 발전(發電)의 원료로 사용되고 있다. 만들어지는 데 짧게는 수백만 년, 길게는 수억 년까지 걸리는 화석연료는,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그 소비량이 급격히 늘어 현재 모든 에너지 사용량 중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2016년 맥킨지 보고서는 2050년의 화석연료의 소비량은 지금보다 약 8% 가량 줄어들 것이라고 예측했다. 하지만 화석연료 사용으로 인한 연쇄 반응을 우려한 소비량의 감소로 인해, 20여 년 전과 현재의 잔여 매장량은 여전히 향후 50~60년 분량 정도로 예측되고 있다.

앞으로 원자력과 친환경 발전을 포함한 전기 생산량을 획기적으로 늘린다 해도, 향후 30년 동안 총 비중의 30%는 넘지 못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생산을 늘리지 못한다면 해답은 다른 쪽에서 찾을 수 있다. 소비를 줄이면 된다. 단순히 보일러의 온도를 24도에서 20도로 낮추는 것이 아니라, 보일러의 전기 소비효율을 높여 24도를 유지하는 데 드는 전기 소비량을 줄이는 것이다. 전기 생산에 화석연료의 1/3을 소비하고 있는 현재, 전기를 사용하는 모든 기기를 만드는 제조사들은 더 나은 성능과 더 높은 효율 중 어느 것을 추구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Part 1. 지능형 전력망 시스템의 과거와 현재
Part 2. 스마트 그리드의 설계와 구성을 위한 과제
Part 3. 국가별, 기업별 스마트 그리드 기술 구현 현황

 

유지의 가능성,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지능형 전력망 시스템의 과거와 현재

어디서나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 이하 IoT)이 거론된다. 종이 몇 장을 스테이플러로 묶으면 컴퓨터가 침이 몇 개 남았는지 곧장 알려주는 시대가 곧 올 것처럼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홈 IoT 시스템이 일반화되는 것은 파리 올림픽 전까지는 어렵다고 보고 있는데, 기술과 솔루션의 협업이 지금과 같은 속도로 이뤄진다면 그 전에도 보편적인 개념이 될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도심을 비롯해 사람이 살고 있는 모든 곳에 필수인 요소가 있다. 물과 공기 등의 자연적 요소를 제외하면 첫 번째가 전기다. 향후 보급될 홈 IoT 시스템을 포함해 우리 생활의 모든 요소는 전기가 필요하다. 자동차는 정제된 화석연료로 굴러가지만, 엔진과 미션 이외의 모든 소비적 구동부는 제너레이터로 충전하는 전기가 필요하다. 전세계에서 발전(發展)을 위한 발전(發電)에 집중하고 있는 이유다.

산업혁명 이후 전 세계에서 지표를 뚫고 석탄과 석유를 퍼내기 시작하면서 지금의 문명사회를 구축할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화석연료의 사용으로 인한 환경오염이 심각해지면서 대체에너지에 대한 연구 역시 진행되고 있고, 이는 인간이 사용하는 주된 연료가 바뀔 때까지는 계속해서 함께 가지고 가야 할 딜레마 중 하나다.

새로운 에너지가 필요한 이유
화석연료는 만들어지는 데 수백만 년이 소요된다. 지금도 지층 깊은 곳에서 석유와 석탄, 가스 등으로 만들어지고 있지만 그 속도는 매우 느리기 때문에 그 양이 한정적이다. 에너지가 필요한 기기의 소비 에너지를 줄이는 것도 한계가 있다. 자동차 기술이 아무리 발전한다 해도 휘발유 한 방울로 100km를 달릴 수는 없다. 풍력, 수력, 태양광 등의 재생에너지를 사용하는 추세가 조금씩 늘고 있기는 하지만, 에너지 자원에서 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아직도 미미한 수준이다.

[표 1] 전력망 구조 비교(출처=한국스마트그리드사업단)

1950년대에 새로운 발전 방식으로 원자력 발전이 떠올랐다. 중성자와 우라늄을 충돌시켜 연쇄반응을 일으키는 방식으로 터빈을 돌리는 원자력 발전은, 같은 전력을 다른 재생에너지 발전소보다 훨씬 적은 공간을 차지하면서도 생산전력 단가가 LNG나 석탄보다 저렴하다. 하
지만 발전 방식 자체의 위험성과 더불어 방사능 유출에 대한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고, 사용 후의 부산물인 핵연료봉으로 인한 환경오염 문제가 항상 제기된다. 당장 일본의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를 보면 알 수 있다. 국내에선 지난 2017년 원자력 발전의 비중을 축소하는 탈원전 에너지 정책이 진행되고 있으며, 세계적으로도 원자력 발전의 비중을 조금씩 줄이는 추세다.

하지만 이는 현재 생산하고 있는 총 전력량과 소비량을 계산했을 때 예비전력이 충분하다고 판단한 결과로, 원전의 축소로 인한 전력량 감소를 다른 형태의 발전소로 대체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2016년 기준으로 국내 총 발전량에서 원자력이 차지하는 비중은 36.3%로, 이를 포함한 화석연료 비중이 98.4%다. 2000년에는 원자력 발전의 비중이 44.7%까지 높았지만, 이후 조금씩 줄어들어 전체 발전량의 1/3 정도를 유지하고 있다.

새로운 에너지 생산 방식을 찾는 것은 당연한데, 발전 방식은 환경에 따른 제약이 상당히 크다. 영국처럼 일조량이 높지 않은 곳에서는 태양열 발전이 의미가 없고, 내륙지방에선 수력 발전을 하기 어렵다. 위치와 지형에 따라 그에 적합한 발전 방식을 적용하면 되겠지만, 시설 설치 대비 수집 전력량을 계산해 보면 전력 생산량보다 설비비용이 더 많이 드는 경우도 있다. 이는 태양광 발전을 제외한 모든 발전소가 공통적으로 터빈을 돌려 전기를 발생시키는 방식에 의한 한계가 명확하기 때문이다. 가장 많은 전력을 소비하는 거대 기업들에 더 높은 세금을 부과해 기업 자체적으로 효율의 향상을 연구하도록 만드는 방법도 있지만, 일반 가정의 전기세보다 공장 전기세가 더 저렴한 국내에선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다.

발전 원료의 양은 제한적이고 소비량을 줄이는 것도 한계가 있으니, 결국 현재 전력 생산과 소비의 균형을 맞추는 관건은 ‘효율’이란 답이 나온다. 생산, 송전, 소비 단계에서 손실되는 전력과 사용하지 못하고 낭비되는 전력을 최대한 줄이는 것이다. 간단하게는 집 앞 현관의 센서등은 사람이 움직여야 불이 켜진다. 항상 켜져 있거나 직접 켜고 끄는 것보다 합리적이다. 이런 솔루션을 전력이 소비되는 시스템 전체에 적용시키는 것이 현재 시점에서 시행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다.

▲인텔이 2009년에 출시한 i7-870 린필드 프로세서는 4코어 8스레드, 기본 동작 속도 2.93GHz, 최대 3.6GHz였다. 그리고 2017년 내놓은 7세대 i7-7700 카비레이크 프로세서는 같은 구성에 3.6GHz의 속도를 기본으로 낸다. 무엇이 달라졌을까? 전자는 제조공정 45nm, 후자는 14nm로 작아졌고, 열 설계전력(Thermal Design Power, TDP)는 각각 95W, 65W다. 코어 최대 동작 속도를 기준으로 보면 약 15% 정도의 향상이지만, 제조공정 미세화와 향상된 TDP 등의 조건을 통합하면 종합 성능의 차이는 2배 이상이다.(출처=UserBenchmark)

 

 

목적은 ‘절감’, 방법은 ‘효율’
1940년대에 발명된 컴퓨터 에니악에는 어른 종아리만한 크기의 진공관이 1만 8000개가 넘게 장착됐다. 컴퓨터를 가동시키면 약 150kw의 소비전력으로 작동하는 에니악은 주변의 가로등이 흐릿해질 정도로 엄청난 전기를 소모했고, 그렇게 작동되는 컴퓨터는 초당 5000회 정도의 덧셈을 연산할 수 있었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스마트폰의 계산기가 초당 20억 회 이상 연산할 수 있으니, 그 성능은 소비전력을 빼고 연산 성능만으로 계산해도 40만 배 이상 향상됐다. 소비전력까지 더하면 그 차이는 100억 배 이상이다.

기술의 발전으로 이만큼이나 소비전력과 대비 성능을 높였는데도, 세계는 아직 효율을 외치고 있다. 효율이 향상된 만큼 사용자도 어마어마하게 늘었기 때문이다. 1940년대의 에니악은 사용자가 극소수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전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개인 통신기기를 사용하고 있다. 과거에는 아날로그 방식이었던 대부분의 용품들도 전기를 사용하는 기기로 바뀌면서 소비량은 점점 늘고 있다.

실시간으로 끊임없이 바뀌는 소비전력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지능형 네트워크 시스템이다. 가정의 형광등부터 공장의 생산설비까지, 전기를 사용하는 모든 시스템을 지능화하고, 전력 공급 체계를 기존의 수직형에서 수평형으로 바꾸는 것이다. 발전소로부터 공급받는 전기를 사용하는 단순 전력망에서 발전해, 공급부터 소비까지의 모든 과정에서 낭비를 줄이고 효율을 높이는 것이 스마트 그리드 시스템의 목적이다.

김전기 씨의 홈 스마트 그리드 시스템
일반 가정에 적용되는 스마트 그리드 시스템을 예로 들어보자. oo동의 아파트에 거주하는 얼리어답터 김전기 씨는 얼마 전 한국전력공사의 추천으로 가정에 홈 스마트 그리드 시스템을 적용했다. 홈 스마트 그리드는 아직은 모든 가정에 적용할 수 없고, 기존에 홈 IoT 서비스를 사용하고 있는 가정에 한해 선택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 김전기 씨는 담당자로부터 “최종적으로는 전력 생산에 소비되는 연료의 양을 줄여 환경오염을 절감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시스템을 설치하기로 했다.

먼저 집안 모든 콘센트와 전기를 사용하는 기기 사이에 소형 전력측정기가 연결되고, 주전원 차단기 옆에 스마트미터가 설치됐다. 모니터에서는 가정으로 공급되는 전력량과 집안에서 소비되는 전력량이 실시간으로 표시된다. 사촌인 김전력 씨의 단독주택에는 태양광 발전 시스템에서 추가로 전력을 얻기도 한다는데, 아파트에 개별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는 것은 무리다. 그래도 이 시스템으로 매년 소비전력을 10% 이상 줄일 수 있다는 말을 믿어보기로 했다.

기본적으로 스마트 그리드는 전력의 입출력 양을 100% 파악하고 있다. 전력 소비가 없던 콘센트에서 약 5W의 전력이 사용되고 있다면, 누군가 어댑터를 꽂아 스마트폰을 충전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김전기 씨가 사용하고 있는 홈 IoT 시스템의 각종 센서들은 전력소비량에 따라 어떤 기기가 연결됐고, 전력을 얼마나 필요로 하는지도 파악해 적정 전력을 배분해 준다. 이는 가정용 시스템의 경우 스마트 그리드 자체만으로는 불가능하고, 각종 기기에 IoT가 적용돼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환경이 구축돼야 한다.

스마트 그리드 시스템이 제 역할을 100% 발휘하는 것은 설치 1개월 뒤다. 가정 내 전력 사용량과 패턴을 파악한 시스템은, 세부사항을 분석해 소비를 줄이거나 에너지 저장 시스템(Energy Storage System, ESS)을 활용해 요금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한다. 항상 켜져 있는 냉장고의 경우, 한 달에 두세 번 장보기로 냉장고에 음식물이 많이 있으면 정상 전력을 공급하고, 내용물이 많지 않을 때는 냉장 효과를 줄여 전력 소비를 낮춘다.

날씨가 추워 실내온도가 떨어지면 시스템이 김전기 씨에게 옷을 한 겹 더 입을 것을 추천하고, 실내 온도 설정은 19도 정도로 맞춰 난방용 가스 소비를 줄인다. 한파가 기승을 부리는 날에는 평소 전기요금이 상대적으로 저렴할 때 ESS에 충전해 둔 전력으로 난방기구를 사용하도록 한다. 이는 한여름에 더울 때 에어컨에도 같은 시스템이 적용된다. ESS는 돌발적인 정전 시 업무 중인 PC의 정보가 날아가지 않도록 간이 UPS 역할로도 활약할 수 있다.

소비전력이 많지 않은 조명기구도 컨트롤해 불필요한 낭비를 줄일 수 있다. 집안에 사람이 없으면 켜져 있던 모든 조명을 끄고, 밤늦은 시간에는 불을 켜놓되 조도를 낮춘다. 기기 충전이 끝난 어댑터는 전원 공급을 완전 차단하고, 컴퓨터를 껐을 때 파워서플라이에 남아 있는 전기는 ESS로 보내 충전에 사용한다.

여기 소개한 대부분의 시스템은 규모가 큰 공장이나 빌딩에도 같은 개념으로 적용할 수 있다. 빌딩에 공간 제한적으로 스마트 그리드가 적용된 것이 인텔리전트 빌딩으로, 상·하수와 공조, 조명을 비롯해 건물에 공통 적용되는 전력망에 스마트 시스템을 적용해 운영비와 전력 소비를 줄이는 것이 목표다.

스마트 그리드가 1차적으로 전력 생산·공급 시스템에 적용되면 건물을 비롯해 대규모 물류창고나 제조공장, 농장 등 다양한 인프라에 적용할 수 있다. 집 한 채, 공장 한 곳에서 절감되는 비용이 10% 정도인데, 이것이 지역, 국가, 전 세계로 퍼지면 10%의 힘은 거대해진다. 줄기차게 부르짖던 지구 온난화 현상의 주원인인 화석연료 사용으로 인한 이산화탄소 발생도 10%를 줄일 수 있다.

시스템의 적용을 위해 선행돼야 하는 것은 전력의 흐름과 소비 등 전기 정보를 통합 관리할 수 있는 실시간 운영체제와 전용 애플리케이션이다. 현재 IoT 시스템의 보편화가 늦는 이유 중의 하나인데, 다양한 센서로 정보를 생성, 수집하는 것은 가능해졌지만 이를 어떻게 수집해 분석할지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잡기 어렵다. 하드웨어 단계에서 수집된 정보의 형태, 그리고 이를 분석해야 하는 소프트웨어 단계에 아직 표준화가 진행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네트워크는 물론 실시간 운영체제(RTOS), 운영 애플리케이션 모두 업체마다 제각각으로 개발하고 있는 실정이어서, iOS와 안드로이드처럼 제공사가 모든 규격에 맞춘 솔루션을 내놓아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하루빨리 통신과 센서 단계에서의 표준 통합이 이뤄지는 것이 다음 단계로 더 빨리 나아갈 수 있는 과제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테크월드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