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퀄리티 – 고속 소비, 멀티코어에서 해답을 찾다

[테크월드=정환용 기자] 멀티 코어 프로세싱은 컴퓨터로 수행하는 여러 가지 작업에서 점점 일반화되고 있다. 코어 하나만으로는 복잡한 연산을 빠르게 수행하는 데 한계가 있고, 같은 속도의 코어를 2개 이상 사용해 작업 속도를 줄이는 것이 ‘컴퓨터’라 부르는 모든 기기의 목표가 됐다. 용도에 따라 듀얼 코어만으로 충분한 작업도 있지만, 슈퍼컴퓨터처럼 수만 개의 코어가 동시에 그 성능을 100% 발휘해야 하는 작업도 있다.

게임을 예로 들어보자. 386 시절 즐겼던 ‘페르시아의 왕자’, ‘원숭이섬의 비밀’처럼 16컬러만으로 구현할 수 있었던 때의 프로세서 속도는 고작 6MHz 정도였다. 현재 가장 인기 있는 온라인 게임 ‘플레이어 언노운스 배틀그라운드’는 적어도 3.6GHz 코어 2개로 구성된 인텔 코어 i3-4340 이상의 프로세서 기반의 PC가 필요하다. 16색의 도트 움직임만 감당하면 되던 때에서, 60Hz로 3D 그래픽을 구현하는 정도로 게임 그래픽은 어마어마하게 발전했고, 이에 맞춰 컨슈머 프로세서 역시 듀얼-쿼드 코어 프로세서가 보급형 성능의 제품으로 자리를 잡았다.

컴퓨터 시장에도 다다익선의 원리는 적용된다. 코어가 많으면 많을수록 시스템의 성능과 속도는 상승하고, 작업에 소요되는 시간도 크게 줄일 수 있다. 옥타 코어 프로세서가 기존의 소비자용 PC의 상한선이었다면, 이제는 데카(10) 코어 이상의 프로세서도 전문가의 영역에서 점점 일반 소비자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인텔이 지난 2017년 11월 출시한 익스트림 에디션 ‘코어X i9-7980XE 스카이레이크’ 프로세서는 옥타데카(18) 코어 구성으로, 가상 스레드가 무려 36개인 강력한 프로세서다.

싱글 코어와 멀티 코어의 차이

위 사진은 1994년 출시된 인텔 펜티엄 P54C 프로세서, 그리고 2017년 출시된 인텔 7세대 카비레이크 프로세서 i7-7700K의 구조다. P54C는 0.18마이크로미터, 7700K는 14나노미터 공정으로 약 8배의 차이다. 166MHz 속도의 P54C P166의 다이 사이즈는 약 90㎟, i7-7700K는 123㎟로 37% 정도 더 크고, 제조공정은 1/8로 작아졌다. 여기 집적된 트랜지스터는 약 500만 개에서 17억 개로 350배 가까이 많아졌다.

하나의 프로세서에 더 많은 트랜지스터를 집적할 수 있게 되면서, 프로세서 내 코어의 숫자를 늘려 연산속도를 끌어올릴 수 있게 됐다. 하나의 코어에 100개의 트랜지스터가 있다면, 이를 반으로 나눠 50개의 트랜지스터로 구성된 코어 2개로 만드는 것이다. 제조공정이 점점 작아지면서 코어 당 트랜지스터의 숫자는 점점 늘었고, 이제 ‘보편적인’ 프로세서가 쿼드코어 구성에 적어도 3.4GHz 이상의 코어 당 속도를 가지게 됐다. 그래픽을 담당하는 GPU까지 내장돼 대부분의 PC에 별도의 외장 그래픽카드가 필요치 않게 되기도 했다.

멀티코어 CPU를 기반으로 PC의 성능이 점점 높아지면서, 과거에는 컴퓨터의 사양에 맞춰 어떻게든 상한선에 맞춰야 했던 프로그램의 구동 요건이 점점 완화됐다. 활용할 수 있는 코어 숫자가 많아지면서 점점 소프트웨어가 하드웨어를 따라가는 추세가 반대로 바뀌었다. 높은 사양을 요구하는 소프트웨어를 따라가기 위해 하드웨어 성능을 높이는 성향이 강해진 것이다. 이 성향은 특히 PC 게임에서 많이 반영됐는데, 최근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플레이어 언노운스 배틀그라운드’가 지난해 8월 6코어 이상 멀티코어를 지원하도록 업데이트됐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PC 온라인 게임이나 패키지 게임에서 6~8코어를 지원하면서, 멀티코어 구성이 PC 성능에 미치는 영향력이 더욱 강해졌다.

게임 뿐 아니라 다양한 프로그램들도 사용 환경의 향상을 위해 멀티코어를 지원한다. CPU 성능 벤치마크에 자주 사용하는 음악 인코딩 프로그램 ‘dbPoweramp’는 음악을 변환할 때 최대 16개의 코어를 사용한다. 기자가 사용해 본 가장 많은 코어 수를 가진 i9-7980XE는 18코어 36스레드 구성인데, 현재 일반인이 사용하는 프로그램 중 단일 소프트웨어로 이 스레드를 모두 사용할 수 있는 것은 CPU-Z와 같은 테스트 프로그램 외에는 거의 없다.

인텔 최강, 18코어 프로세서
코어X i9-7980XE 스카이레이크 익스트림

다른 요소들을 제외하고 오로지 성능만으로 판단하자면, i9-7980XE는 일반 소비자가 사용할 수 있는 인텔 프로세서 최고의 성능을 낼 수 있다. 2066소켓 크기의 프로세서에 그래픽 유닛을 배제하고 18개의 코어를 배치했다. 코어 당 성능은 기본 2.6GHz, 터보부스트 시 최고 4.2GHz까지 상승한다. 오버클럭을 통해 기본 속도를 4.0GHz까지는 끌어올릴 수 있다.i9-7980XE를 오버클럭하려면 상당히 성능이 좋은 쿨러가 필요하다. 기자가 가진 공랭식 쿨러로는 4.0GHz가 한계였고, 그 이상을 설정하려 하니 온도가 너무 높다며 부팅이 되지 않았다.

i9-7980XE는 사실 그 용도가 명확하게 구분돼 있는 프로세서다. 고해상도 블루레이 영화를 인코딩하거나 게임을 즐기는 정도로 PC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7980XE의 고성능을 100% 활용하기 어렵다. CPU 수십만 개를 장착하는 슈퍼컴퓨터처럼 숫자처럼 보이지도 않는 엄청난 단위의 연산을 수행할 일이 없다면 말이다. 또한, 멀티코어를 더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선 PC에서 구동하는 프로그램이 자원을 잘 배분하도록 짜여 있어야 한다. 결국 i9-7980XE처럼 코어 숫자가 많은 프로세서를 최대한 활용하려면, 다양한 프로그램을 동시에 구동하거나 코어 전체를 활용하는 작업이 요구되는 환경이어야 한다.

i9-7980XE의 기본 동작 속도는 2.6GHz로 i5, i7 시리즈보다는 느리다. 터보부스트 시 4.2GHz, 터보부스트 맥스 3.0 기술로 최대 4.4GHz까지 빨라지긴 해도, 단일 코어 성능만 보면 8세대 i5-8400(기본 2.8GHz, 터보 4.0GHz)와 비슷하다. 두 제품의 차이는 스레드 숫자가 6개, 36개로 i9-7980XE가 6배 더 많다는 것. 파일 하나 인코딩에 스레드 하나를 사용하는 프로그램을 예로 들면, 단순 계산으로 인코딩에 1시간이 소요되는 작업을 36개 코어로 10여 초 만에 끝낼 수 있다. 이는 프로그램에서 작업량을 어떻게 코어에 분배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어도비 프리미어, 소니 베가스 등의 영상 편집 프로그램들은 편집 작업에 8개 정도의 스레드를 사용하고, 멀티코어가 적용되는 기능들을 활용할 때는 그 효율이 더욱 높아진다.

많은 코어에서 수행하는 작업 속도를 유지하기 위해 i9-7980XE의 L2 캐시는 18x1MB, L3 캐시는 24.75MB로 구성돼 있다. 메모리는 시스템 버스 2666MHz까지 지원해, DDR4 PC4-21300까지 지원할 수 있다. PC4-25600, 3000MHz 속도의 고성능 메모리도 다양하게 출시돼 있는 시점에서 이 부분은 약간 아쉽다. 이밖에 ▲옵테인 메모리 지원 ▲I/O를 위한 인텔 가상화 기술 ▲SSE4.1/4.2, AVX 2.0, AVX-512 명령 셋 확장 ▲PCIe 최대 44레인 등의 성능으로 X299 칩셋 메인보드에서 작동한다. 정식 출시 가격은 1999달러로, 3월 말 현재 시장에서 약 210만 원대에 판매되고 있다.

기술 사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