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월드=정환용 기자] 컴퓨터로 글을 작성할 수 있는 수단은 메모장부터 커뮤니티 게시판까지 다양하다. 그런데 글을 문서 파일로 만드는 것으로 범위를 좁히면 그 수단 역시 줄어든다. 한글로 작업한 *.hwp 파일은 마이크로소프트 워드로 작업할 수 없고, 맥OS에서 작업하던 *.pages 파일은 윈도우의 메모장으로는 볼 수 없다. 프로그램의 버전만 달라도 열람이 어려웠던 과거에 비하면 많이 편해지긴 했지만, 끝없는 편의를 추구하는 우리들에게는 아직도 한 걸음이 부족하다.

최근에는 사용자가 어디에서 어떤 플랫폼을 이용하든 서비스 제공업체가 작업을 연결시켜 주는 것이 추세다. 애플의 맥 시스템을 2년여 동안 사용하면서, 외부에서 아이패드로 작업하던 pages 문서 파일을 사무실에 돌아와 아이맥으로 이어서 작성하는 것이 무척 편리했다. 사용자가 컴퓨팅 시스템을 사용하며 바랐던 경험의 연결이 구현된 것이다. 그리고 최근에는 구글의 웹브라우저 ‘크롬’, 마이크로소프트의 ‘오피스365’에서도 사용자 경험이 연결되고 있다.

같은 게임 타이틀도 PC 버전과 PS4 버전의 차이가 상당하다. 입력장치부터 PC는 키보드와 마우스, PS4는 듀얼쇼크 컨트롤러다. 게임 콘솔은 하드웨어 성능 향상의 여지도 없고 입력 방법도 상당히 제한적이다. 같은 작품을 다른 플랫폼에서 즐길 수는 있지만, 현재의 PC와 모바일 기기의 교감처럼 두 시스템이 유연하게 연결되는 경험을 하려면 개발자든 사용자든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

같은 시간에 캡처한 포털사이트 다음의 PC 페이지와 모바일 페이지. 이미지 기사는 이 화면을 캡처하는 약간의 시간차 사이에 한 건이 바뀌었지만, 상단 텍스트 기사는 순서가 동일한 걸 알 수 있다. PC 접속보다 모바일 접속 비중이 더 큰 지금은 오히려 모바일 페이지에 더 최적화돼 있지 않은가 싶은 생각도 들 정도로 정리가 잘 돼 있다.

 

 

구글의 웹브라우저 크롬의 PC 버전과 모바일 앱 버전의 캡처 사진이다. 기자가 구글 계정으로 로그인한 두 환경의 북마크가 동일하다. 아직은 계정 로그인 시스템까지 공유되진 않지만, 머지않아 PC에서 게임 커뮤니티에 로그인을 해두면 모바일 페이지에서도 로그인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계정 연결 솔루션도 곧 이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사용자 경험(User eXperience)이란?
사용자 경험은 어떤 제품이나 서비스를 사용자가 이용하며 생각하는 모든 직·간접적 경험을 뜻한다. 스마트폰을 예로 들어 설명하면 이해가 빠를 듯하다. 스마트폰이 보편화되며 가장 많이 사용되는 단어 중 하나가 ‘UI’(User Interface)인데, 스마트폰의 운영체제, 각종 버튼의 위치와 기능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구글(안드로이드)과 애플(iOS) 양강체제인 모바일 운영체제는, 스마트폰 제조사마다 고유의 UI를 가지고 있다(iOS가 적용된 스마트폰은 아이폰 한단일 기종이다). 터치 패턴으로 잠금을 해제하고 앱을 사용하는 일련의 행위가 사용자가 행하고 느끼는 사용자 경험이다.

아이폰의 사용자 경험을 바탕으로 기능의 향상이나 변화를 보자. 아이폰 5까지는 앱을 다운로드받거나 인앱 결제를 할 때 일일이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했다. 당연한 보안 절차였지만 사용자들은 이 과정이 좀 더 간편해졌으면 했다. 차기작인 아이폰 5S부터는 홈 버튼에 지문인식 기술(터치ID)이 적용돼, 사용자는 새 앱을 다운로드받거나 인앱 결제를 할 때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대신 홈 버튼에 손가락을 대기만 하면 된다. 같은 작업이 좀 더 간결해진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오피스 365’는 대표적인 오피스 프로그램 3종(워드, 엑셀, 파워포인트)을 포함한 오피스 프로그램을 패키지 구입에서 이용료를 지불하는 형식으로 판매 전략을 수정했다. 가격 정책보다 반가웠던 것은, 자사의 클라우드 서비스를 활용해 어디서든 작업을 이어서 수행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윈도우, 맥, 모바일 등 어떤 플랫폼에서도 그 경험이 이어진다는 점이 최대의 강점이다.

이처럼 사용자 경험으로 인해 사용자 인터페이스가 한 층 발전했다. 터치ID가 적용된 아이폰의 홈 버튼은, 단지 비밀번호를 대신하는 것뿐만 아니라 무선 결제 시스템 애플페이의 서명도 대신한다(아직도 국내엔 서비스되지 않고 있다).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기기 성능의 향상 정도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겉으로 보이는 디자인부터 각종 기능의 세부적인 항목까지 모든 면에서의 향상성을 논할 수 있는 것이 사용자 경험이다.

사용자 경험은 단지 그 사용자가 원하는 방향으로의 발전을 목표로 하지 않고,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길을 찾아야 한다. 때문에 공학뿐 아니라 인문학이나 미술까지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기업이 성공할 수 있는 길이라고도 볼 수 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기업에 반기를 들 소비자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확장되는 사용자 경험
폴더형 휴대폰을 사용하던 시절에는 컴퓨터와 휴대전화의 역할이 완전하게 구분돼 있었다. 물론 PC로 누군가와 통화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고, 휴대폰으로 인터넷 검색도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의 휴대폰 웹브라우저는 규격이 거의 정해지지 않아 제조사, 통신사마다 시스템이 제각각이었다(물론 효용 가치도 거의 없었다).

스마트폰과 태블릿PC의 등장으로 모바일 기기가 컴퓨터의 영역에 들어온 뒤, 웹 서비스 업체들은 바빠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신기한 맛에 참았지만, 4인치 남짓의 작은 화면으로 PC 웹브라우저 화면을 보는 것은 고역이었다. 사용자들은 PC에서 보던 것과 같은 경험을 스마트폰으로도 할 수 있기를 바랐고, 네이버와 구글을 비롯한 웹 서비스 제공업체들은 저마다 모바일 페이지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ICT 기술로서의 사용자 경험은 ‘편해지고 싶다’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에 맞춰 발전하고 있다. 다양한 업체에서 제공하고 있는 클라우드 서비스는 앞으로 맞이하게 될 확장형 사용자 경험의 초창기 형태로 볼 수 있다. 동기화 기능을 통해 자신이 구축한 업무 환경을 사무실에서 집으로 가져올 수 있게 하는 것이 클라우드 서비스이고, 앞으로의 사용자 경험은 그 경험의 제한이 줄어들고 범위가 점점 넓어지게 된다. 가장 간단해 보이는 방법은 플랫폼의 규격화인데, 지금처럼 개성 넘치는 시대에 플랫폼 통일에 동의할 기업은 없어 보인다.

다른 행위 같은 경험, 클라우드의 지향점
사용자가 저마다 다른 장소에서 하나 이상의 플랫폼으로 같은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생활 속의 ICT 경험에 자리를 잡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주목할 점은, 이런 경험을 위한 사물 간의 연결이 네트워크를 통해 사물, 가정, 사무실, 공장 등 인간의 생활 깊숙이 빠른 속도로 퍼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우리는 마이크로소프트 원드라이브, 구글 드라이브 등의 클라우드 서비스로 이를 체험하고 있다. 기자가 사무실에 외장하드를 두고 와도, 집에서 웹브라우저를 통해 사무실에서 작업하던 데이터를 그대로 이어받을 수 있다. 이런 서비스가 가능해진 것이 불과 몇 년 전인데, 이제 클라우드는 직장인들이 당연히 사용해야 하는 필수 서비스가 됐다.

사용자 경험에는 기술적인 이슈뿐만 아니라 사용자가 직접 겪게 되는 대부분의 감각이 포함된다. 이는 IT 분야에서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를 대상으로 만들어지는 모든 것에 적용되는 개념이다. 자동차로 말하자면 과거 운전자가 속도를 내려면 액셀러레이터에서 발을 때고 클러치를 밟아 기어를 올린 뒤 다시 액셀러레이터를 밟아야 했다. 지금은 거의 모든 승용차에 자동 변속장치가 적용돼 운전 기술에서 기어 변속이 사라졌다(물론 1종 보통 면허 취득을 위해선 아직 수동 운전 능력이 필요하다).

현재 활발하게 연구가 진행되는 자율주행 기술이 현실이 되면 ‘운전’이란 행위의 개념이 바뀌거나 사라지게 될 수도 있다. 자율주행의 최종 목적은 페달과 스티어링 휠이 사라지는 것인데, 그렇게 되면 ‘운전’(運轉, 기계나 자동차 따위를 움직여 부림)이란 개념 자체를 바꾸는 결과를 가져온다. 운전석의 개념도 사라질 것이고, 운전면허도 필요가 없어지니 전 세계의 운전면허 학원들은 문을 닫게 된다. 단지 더 편해지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 마치 나비효과처럼 경험의 축적으로 인한 기술의 발전에 대한 파급효과가 점점 커진다는 것이다.

경험의 연결, 편의와 편협 사이
문득 기술 발전의 종착역은 어디일지, 어느 정도일지 궁금해진다. 영화 ‘써로게이트’처럼 본인은 기계 장치에 누워 있고, 젊고 건강한 인공의 자신을 조종하는 세상? 애니메이션 ‘월-E’처럼 인간이 저지른 과오를 로봇에 맡겨 두고 진화를 포기한 삶? 폭넓은 사용자 경험이 쌓여 기술이 발전하는지, 기술의 발전으로 경험의 폭이 넓어지는지는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다만 그 종착역에 있는 것이 희망일 것이란 보장은 없다. 단순히 지금처럼 ‘더 빠르게, 더 효과적으로, 더 편안하게’만을 추구하는 사용자 경험은, 서로 다른 명령의 행위들이 하나로 통합될 때 유토피아가 될지 디스토피아가 될지 알 수 없게 만든다.

넓은 범위에서 선(Cable)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키보드와 마우스, 헤드폰과 이어폰 등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던 선이 무선 환경으로 바뀌고 있고, 사람들은 이를 ‘발전’이라 칭한다. 기자는 비교적 옛날 사람이 아닌데도 무선보다 유선을 선호하는데, 경험의 기준을 ‘편의’보다는 ‘품질’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전자기기에서 유선보다 무선의 성능이 더 좋은 경우는 아직 손에 꼽을 만큼 적다.

스마트폰 이후의 모바일 환경은 알고 보면 10년 역사가 전부인데, 인간의 삶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해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모바일 기기 경험을 쌓고 있는데, 다양해지기보다는 비슷해지기를 바란다. 모바일 기기 세계 점유율의 90% 이상을 2~3개 기업이 장악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는 기술적인 획일화를 설명하기 어렵다. 기술의 발전은 제한이 점점 줄어드는 것과 궤를 같이 하는데, 용도와 활용 범위가 더 다양해질 미래의 기기들에 쌓이는 사용자의 경험이 점점 비슷해지는 것이다. 이는 규격화의 문제가 아니라, 당연히 존중해야 할 소비자로서의 다양성이 발전을 빌미로 점점 단순해지는 것을 온전히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다. ‘우리가 세계를 더욱 단순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자랑하는 미래가, 과연 지금보다 나아진 세상일지는 한 번 더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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