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소원은 통일?

[테크월드=정환용 기자] 사무실에 출근해 PC를 켜고 업무자료가 담긴 USB 메모리를 PC의 포트에 꽂는다. 어제 진행했던 인터뷰 중 촬영한 사진을 편집하기 위해 카메라 속 SD카드를 뽑아 리더기로 PC에 사진들을 옮긴다. 어제 충전을 깜박해 배터리가 얼마 남지 않은 아이폰의 8핀 충전기를 콘센트에 연결한다. 오전까지 끝내야 할 업무를 위해 3.5mm 오디오 잭을 스마트폰에 연결하고 조용한 음악으로 집중력을 높인다.

위 상황의 제품들에 공통 적용된 것은, 같은 목적을 가진 기기를 어디서든 사용할 수 있는 규격화다. 같은 제품을 개발하는 기업들에 있어, 그 용도는 같은데 규격이 제각각이라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클 수 있다. 2G 휴대폰 시절의 충전 포트가 그랬는데, 브랜드마다 제품마다 포트가 모두 달라 전용 충전기가 없으면 충전이 불가능했다. 다행히 2014년부터 국제전기통신연합이 (애플 아이폰을 제외한) 모든 스마트폰의 충전과 데이터 연결 포트를 마이크로 5핀 케이블로 통일하기로 했다.

동일한 기능의 기기 간 연결 포트를 국제표준규격으로 통일하는 것은 무척 중요하다. 기업이 자사 제품에 독자규격을 적용하고 싶은 것은, 제품에 대한 또 하나의 독자성을 부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때문에 무조건 독자규격을 배제하고 표준규격만을 강요할 순 없다. 다른 제품들과 규격을 달리 적용하는 것은 법적으로도 문제가 없다. 당장 애플의 모바일 기기를 봐도 그렇다. 다만 독자규격을 적용하려면 사용자들이 납득할 수 있는 기술적 근거가 있어야 한다. 우리가 거의 매일 사용하는 컴퓨터에 적용된 국제표준규격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알아보자.

 

소비자와 개발자, 모두에게 장점?
표준규격은 모든 분야에서 필요로 하는 과정이다. 비정부 기구인 국제표준화기구(International Organization for Standardization, ISO)의 인증이 괜히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것이 아니다. 기자가 지금 원고 마감을 위해 사용하고 있는 문서 프로그램이나, 이 글을 게재한 홈페이지를 이용하는 웹브라우저 모두 프로그래밍 언어로 만들어진 것인데, 이 프로그래밍 언어도 ISO 표준 규격으로 지정돼 있다. C 언어는 ISO 9899, C++ 언어는 ISO 14882를 비롯해 파스칼, SQL, 베이직, 프롤로그, 자바스크립트 모두 ISO 표준 규격이 적용된다. 이밖에도 최근 영상 파일 인코딩에 많이 사용하는 MPEG 4나 AVC 등의 코덱 역시 ISO 규격으로 인증을 받았다.

표준규격은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가 필요로 하는 과정이다.

사실 어떤 인터페이스의 규격이 통일되는 것이 소비자들의 구매 의향에 주는 영향은 점점 줄어드는 것이 현실이다. 소비자들이 제품이나 서비스를 이용하며 제작과 관련된 부분까지 신경을 쓰거나 의견을 나누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소수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소비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그 제품의 용도와 만듦새, 가격 정도가 전부다. 노트북을 구매한 사람 100명 중에서 충전 어댑터의 표준화 여부를 구매 기준으로 잡은 사람은 한 명이 있을까 말까 한다.

하지만 사용자나 생산자의 편의를 위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제품 생산과 사용에 있어서 표준화는 필요하다. 노트북의 어댑터처럼 표준규격이 제각각인 것이 없다. 같은 브랜드의 노트북이라도 전압이 달라 함께 사용하기 어렵다. 이런 경우 노트북을 교체하면 어댑터 역시 버려진다. 엄청난 자원 낭비와 환경오염이 아닐 수 없다. 만약 모든 노트북 제조사들이 어댑터의 규격과 전압을 규격화한다면, 하나의 어댑터로 대부분의 노트북을 사용할 수 있어 불필요한 낭비를 줄일 수 있다. 이것이 보편화되면 노트북의 구성품에 어댑터가 기본 포함되지 않아도 되니 제품 가격도 낮출 수 있다. 스마트폰의 연결 포트가 마이크로 5핀으로 통일된 것처럼, 언젠가 노트북 어댑터도 브랜드에 관계없이 함께 사용할 수 있게 됐으면 한다.

지금은 8핀, 마이크로 5핀, USB-C 포트를 지원하는 멀티 케이블 하나면 거의 모든 모바일 기기를 충전할 수 있다.

 

컴퓨터 시스템의 대표적인 표준규격
USB(Universal Serial Bus)

단적으로, 현재 가동되는 모든 데스크톱과 노트북에는 USB 포트가 적어도 1개 이상 배치돼 있다. 특수 목적으로 제작됐거나 보안을 목적으로 사용을 제한한 것이 아니라면, A 타입이든 C 타입이든 하나 이상의 USB 포트를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정상이다. 세대를 거쳐 3.0 버전이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고, 기존의 포트와 같은 성능에 상하 대칭으로 좀 더 작아진 크기의 USB Type C(이하 USB-C) 형태가 있다. 컴퓨터의 주변기기를 연결하는 인터페이스로서는 압도적인 점유율을 가지고 있으며, 썬더볼트가 그 자리를 넘보고 있기는 하나 아직은 미미한 수준이다.

USB 포트는 1997년 윈도우 95에서 처음 지원하기 시작했고, 사용자들이 보편적으로 쓰기 시작한 것은 USB 드라이버가 기본 포함된 윈도우 2000부터다. PS2 포트를 사용했던 키보드와 마우스가 USB로 바뀐 시점부터는 휴대용 메모리나 외장하드, 도킹스테이션 등 거의 모든 주변기기의 인터페이스로 USB가 사용되고 있다.

USB 포트의 버전에 대해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 약간 다른 내용이 있다. 보통 단자 내부의 포트 컬러가 파란색이면 USB 3.0으로 보면 되는데, 버전으로 따지면 ‘USB 3.1 Gen 1’이다. USB 3.1 Gen 1은 후속 버전이 나오면서 지칭하는 이름이 바뀐 것으로, 두 표기는 사실상 같은 규격이고 속도도 3.9Gbps로 같다. 이는 USB 시리즈의 로고를 봐도 알 수 있는데, 버전 2.0이 나왔을 때는 로고 위에 ‘HI-SPEED’ 문구가 따라왔고 3.0에는 ‘SUPERSPEED’가 붙었다. 10Gbps 속도를 지원하는 USB 3.1은 ‘SUPERSPEED+’ 문구가 붙으며, 이는 ‘USB 3.1 Gen 2’라 표기하는 것이 옳다.

노트북의 경우 USB 포트 옆의 로고를 보면 어디까지 지원하는지 알 수 있다. 위 사진의 USB 3.1 포트는 단자가 푸른색으로 같은데, 10Gbps를 지원하는 USB 3.1 Gen2 포트는 단자 옆의 로고에 숫자 ‘10’이 들어가 있다. 이 경우 Gen2를 지원하는 외장 스토리지와 연결하면 10Gbps의 속도를 온전히 경험할 수 있다.

위아래가 같아 뒤집어 꽂아도 작동하는 USB-C 포트가 조금씩 보편화되고 있다. PC 메인보드나 노트북에 하나씩 배치된 경우가 많은데, 아직 USB-C 포트를 지원하는 주변기기가 많지는 않다. 같은 속도를 내는 USB 3.1 Gen2 Type A 포트도 (구)3.0 포트처럼 색의 통일이 되지 않아, 하늘색을 쓰는 업체도 있고 붉은색을 쓰는 업체도 있다. 이는 Gen2 포트가 보편화되면서 자연스럽게 하나로 통일될 가능성이 크다.

 

LAN 케이블
네트워크 연결에 필수인 LAN 케이블은 어떤 기기에서도 같은 규격의 RJ-45 포트를 사용한다. ‘연선 케이블’(Twisted pair cable)이라고도 불리는 LAN 케이블은 기본적으로 한 쌍씩 꼬여 있는 8가닥의 케이블을 RJ-45 단자에 순서대로 배치해 사용하며, 그 순서는 다음과 같은 색으로 구분한다. 홀수 위치의 케이블은 2개 색의 전선이 노이즈를 줄이기 위해 꼬여 있는 것을 뜻한다.

백색/주황색 – 주황색 – 백색/녹색 – 청색 – 백색/청색 – 녹색 – 백색/갈색 – 갈색

이 순서는 일반적인 다이렉트 케이블(T568B)의 배선 순서다. 공유기와 PC를 연결할 때 주로 다이렉트 케이블을 사용하며, 가장 많이 사용하는 배선 방식이기도 하다. 같은 종류의 기기를 연결하는 것은 크로스 케이블(T568A)을 사용하는데, 이 순서를 1~8로 가정했을 때 3-6-1-4-5-2-7-8 순서로 배선돼 있다. 최근에는 같은 종류의 장비도 다이렉트 케이블 연결을 지원하기 때문에, 크로스 케이블의 점유율은 점점 줄고 있다.

LAN 케이블은 주변의 전파 간섭을 줄이기 위해 내부에 은박으로 내부 전선을 감싸는 차폐 과정을 추가한다. 이 차폐가 안 돼 있는 것은 UTP(Unshielded Twisted Pair), 은박이 한 번 감싸지고 접지용 구리선이 추가돼 있는 것이 FTP(Foil-screened Twisted Pair), 4쌍의 케이블이 모두 은박으로 감싸지고 접지용 구리선과 한 번 더 감싸진 것을 STP(Shielded Twisted Pair)라 칭한다. 차폐 순서대로 최대 통신 거리가 각 100미터, 150미터, 200미터로 늘어난다. 배선 거리가 100미터를 넘으면 보통 랜선보다는 광케이블을 사용한다.

랜선은 차폐막의 정도와 함께 전송 속도를 구분하는 ‘카테고리’(CAT)로도 구분할 수 있다. 현재 PC나 공유기에 연결된 랜선을 보면 대부분 ‘CAT.5E’라고 쓰여 있을 것이고, 500Mbps나 1Gbps 서비스를 사용하는 경우 ‘CAT.6’도 간혹 보일 것이다. CAT.5부터 구분되는 이 규격은 전송 가능한 속도와 대역폭으로 구분하는데, 구분에 따른 성능은 위와 같다.

 

국제표준을 위한 SONY의 여정
카세트 플레이어 ‘워크맨’으로 처음 알게 된 소니는 소비자 가전제품 분야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일본의 브랜드 중 하나다. 중학교 시절 처음 알게 된 이후 CD플레이어에서 PS2로, VAIO 노트북으로, PS4로 생각보다 기자의 삶과 꽤나 가까웠다. 무엇보다 가장 덜 알려졌으면서도 세계적으로 국제표준규격의 성과를 올린 것은 미디어 매체 ‘블루레이’다. 소니가 주도하는 ‘블루레이 디스크 협회’(BDA)에서 정한 광 기록 방식 매체인 블루레이는, 싱글 레이어 25GB 정도에서 현재 더블 레이어 128GB까지 저장할 수 있어 현재 가장 활발한 2차 미디어 시장의 주력 상품이다.

현재 가장 높은 화질의 미디어는 4K UHD 해상도를 지원하는 블루레이 디스크다. 4K 블루레이는 현재 재생할 수 있는 기기가 별로 없고, 가격도 저렴한 제품이 20만 원대로 비싼 편이다. 현재 국내에는 정식 출시된 4K 블루레이 타이틀도 많지 않고, 가격도 한 편에 4~5만 원이다. 현재 일반 블루레이 타이틀의 가격이 2만 원대에 형성돼 있으니, 적어도 2022년은 돼야 4K 블루레이 관련 제품들의 가격대가 지금의 블루레이처럼 저렴해질 듯하다. 곧 출시될 마이크로소프트의 Xbox One X로도 4K 블루레이를 재생할 수 있다.

그러나 블루레이 이전에도 소니는 자사의 독자규격을 국제표준으로 인증 받으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해 왔다. 과거 비디오가 성행했던 시절 VHS의 자리를 노리고 만든 베타맥스를 필두로 CD플레이어의 뒤를 이을 것이라고 자신했던 MD(Mini Disk), 자사의 휴대용 게임기 ‘PSP’의 저장매체로 만든 메모리스틱 듀오 등이다. 

PSP용 메모리카드는 SD나 MicroSD 대비 비싼 가격 때문에 시장에서 빛을 못 봤다. 그런데도 차기 휴대용 게임기인 PS Vita 역시 전용 카트리지와 전용 메모리카드를 도입했다. PS Vita 말고는 아무데서도 이용하지 않는 덕에 불법복제를 원천적으로 차단했다는 평도 있다. 하지만 3.5인치 플로피디스크 이후 CD, DVD, 블루레이 등 소니가 만든 광 매체는 대부분 국제표준이 된 것은, 소니가 꾸준히 자사 단독 규격을 고집하는 것에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판단할 수 있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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