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담으로 풀어보는 이야기 인공지능

[테크월드=박지성 기자]  인공지능의 열풍이 거세다. 인공지능이 가져올 새로운 미래에 대한 기대감과 더불어 아직 겪어보지 못한 시대에 대한 두려움이 공존하고 있다. 그렇다면 시각을 조금 돌려 미래가 아닌 과거의 관점에서 인공지능을 바라보는 것을 어떨까?

인간은 오랜 세월 그들이 체득한 경험과 지식을 함축적으로 후대에 전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리고 이런 압축된 ‘지혜’를 전달하기 위해 매우 함축적이지만 한편 굉장히 직관적인 ‘속담’ 과 ‘격언’이라는 방법을 만들어 냈다. 앞으로 두 번 다시 인간이 바둑으로 인공지능을 이길 수 없을진 몰라도, 인간이 만들어 낸 이 ‘지혜’의 결정체들은 지금 우리 눈 앞에서 벌어지는 인공지능 관련 현황들을 조금의 이질감도 없이 설명해 내고 있다.

 

1. 공부에는 왕도(王道)가 없다

세상에는 3대 거짓말이 있다. 노인들의 “어서 세상 뜨고 싶다.”라는 말, 상인들이 하는 “이거 밑지고 파는 겁니다.”라는 말. 그리고 수석 합격자들이 하는 “그저 학교 공부 열심히 하고, 예습/복습 철저히 했습니다.”라는 말이 그것이다. “그저 열심히 했다.”는 이 말은, 뭔가 숨겨진 비결을 기대했던 우리를 낙담케 한다. 그러나 속담은 말한다. “공부에는 왕도(王道)가 없다”고…

 

[그림 1: 딥 러닝 개념도] 별거 없다. 한 마디로 끊임없이 공부한다는 거다.

인공지능도 통찰력 넘치는 이 속담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1956년, 존 매카시 교수에 의해 인공지능이라는 용어가 최초로 소개된 이래 인공지능의 발달은 많은 변곡점을 겪었다. 초반의 연구들은 주로 인간과 같이 판단하고 생각하는 역량을 갖추기 위해 ‘황금율’과 같은 최적의 메커니즘과 규칙을 찾는데 초점을 맞췄다. 마치 우수한 성적의 숨겨진 비결을 찾는 우리들 같이 말이다. 그러나 곧 이런 접근법은 한계에 봉착했다. 특정 규칙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은 비교적 단순한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리곤 마침내 인공지능은 ‘왕도 없는 길’을 걷게 된다. 인터넷 기반의 검색 엔진 등장으로 방대한 데이터 축적이 가능해졌고 머신 러닝을 토대로 이 데이터를 끊임없이 분석하며 인공지능은 비약적 발전을 이룬다. 머신 러닝은 간단히 말하면 ‘많이 그리고 끊임없이’ 시행착오를 반복하는 이른바 왕도(王道) 없는 공부와 같다. 인공지능의 대명사가 돼버린 알파고는 프로 기사의 16만개 기보를 바탕으로 매일 3만번 이상의 대국을 치르며 무수한 승패 속에서 최적의 수를 공부한다. 왕도 없는 학습의 여정 상에서 인간과 인공지능의 차이가 있다면, 인간은 그 길을 걷다 지치기도 하고 흥미를 잃기도 하지만, 인공지능은 그 길을 우직하게 끝까지 걷는다는 점이다. 전원만 연결되어 있다면 말이다.

 

2. 넘어지지 않고서는 달릴 수 없다

성경은 신이 흙으로 자신의 모습을 본떠 인간을 만들었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사람은 자신과 같이 걷고 뛰는 ‘휴머노이드’ 로봇을 만들고 싶어했다. 그러나 인간은 신이 아니기에 무수히 많은 실패를 겪어야만 했다.

세계 최초의 이족보행 휴머노이드인 혼다의 아시모(Asimo) 개발은 1986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아시모의 초기개발 모델인 E0은 두 다리로 걸을 수는 있었지만, ‘걷는다’라고 표현하기엔 부족함이 많았다. 한 걸음을 내딛는 속도가 무려 20초 정도로 현저히 느렸기 때문이다. E0가 적용한 정적보행(Static Walking) 방식은 로봇의 무게중심 전체를 한 다리가 지지하고 있으면, 천천히 한 발짝을 내딛는 방식이었다. 이 기술은 다분히 ‘넘어지지 않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러나 아시모가 보다 ‘인간과 같이’ 걷기 위해서는 인간에 대한 연구가 필요했다. 그리고 혼다의 연구진은 답을 찾아냈다. 이른바 동적보행(Dynamic Walking) 방식을 도입한 것이다. 정적보행과 달리 동적보행은 로봇이 넘어지는 상황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로봇이 넘어지는 상황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대신 넘어지기 직전 다른 다리를 내딛는 방식을 통해서, 인간의 보행을 유사하게 구현해냈다. 동적보행을 바탕으로 아시모는 마침내 계단 오르기, 뛰기 등의 동작을 구현할 수 있게 되었고 세계최초의 이족보행 휴머노이드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넘어지지 않고 걷는다’가 아니라 ’걷기 위해 넘어진다’ 는 관점의 차이가 만들어 낸 쾌거였다.

[사진 1: 아시모 프로토타입] 이족보행 연구의 기반이 된 E1~3 

 

3. 한 우물만 파라

[그래프 1]은 인공지능이 촉발한 IT 업계 內 희비쌍곡선을 절묘하게 표현한다. 그 주인공은 바로 CPU(중앙처리장치) 최고 강자였던 인텔(Intel)과 GPU(그래픽처리장치) 기업 엔비디아(NVIDIA)이다. 최근 PC 성장 둔화와 함께 인텔의 아성은 흔들리고 있는 반면, 엔비디아는 4차산업혁명의 차세대 주자로 급부상하고 있다.

[그래프1] CPU와 GPU 생산액, 인텔과 엔비디아 추가 추이 (자료=이코노미스트)


‘중앙’처리장치와 ‘그래픽’처리장치라는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 기존에 업계는 사실 GPU보다는 CPU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이는 바로 CPU와 GPU의 역할과 구조에 기인하는데, CPU는 복잡한 연산을 빠르게 처리하는데 특화된 반면, GPU는 그래픽 등 단순한 연산을 반복 수행하는데 최적화된 구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구조적 차이는 인공지능을 만나며 전혀 다른 양상을 낳았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인공지능의 진화 방향이 왕도 없는 길 즉 ‘다수 데이터의 반복적’처리로 진행 되면서 이에 최적화 된 GPU 수요가 폭증하게 된 것이다. 반면 PC 산업 둔화와 함께 CPU는 수년 째 제자리 걸음 중이다.

사실 인텔이 GPU 사업을 전개하지 않은 건 아니다. 인텔 역시 당시 업계 표준 기술인 Open CL을 채택하여 GPU 사업을 수행하였으나, 주력 CPU 사업이 아니다 보니 GPU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엔비디아에 미치지 못했다. 반면, ‘08년 금융위기 이 후 위기에 직면하며 기업 존폐 기로에 섰던 엔비디아의 CEO 젠슨 황은 자사의 GPU 기술 CUDA를 우직하고 절박하게 밀어붙였다. 그리고 마침내 엔비디아가 판 우물이 넘치기 시작했다. 자율주행차 등으로 더욱 커질 인공지능과 클라우드 컴퓨팅 붐, 최근 압도적 관심을 구가하는 가상화폐의 GPU의 수요는 가히 폭발적이다. CPU 인텔에 가려졌던 GPU 기업 엔비디아의 상한가는 아직 도달하지 않았다.

 

​4.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

최근 글로벌 물리보안 산업의 최대 화두는 단연 인공지능 기반의 영상인식 보안이다. CCTV 카메라에 찍힌 피사체의 행동패턴과 얼굴 등을 인지하여 발생할 수 있는 사고를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첨단 기술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해외 대비 국내 영상인식 기술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이와 관련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이야기한 적이 있다. “애플이나 페이스 북의 경우 업데이트 된 대량의 사진을 기반으로 영상인식 보안을 하고 있는데, 아직 우리는 그런 기업 역량이나 인프라가 갖춰져 있지 않아 안타깝다.” 그러나 필자는 그런 현실 인식이 더 안타까웠다. 우리에겐 그런 기업 역량이 없다는 말에 필자는 동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진 2: 심심이 서비스 사례] 위트가 넘쳤던 심심이

애플의 시리가 개발되기 훨씬 전 우리에겐 ‘심심이’가 있었다. 페이스북이 자리잡기 휠씬 이전에 우리에겐 ‘싸이월드와 도토리’가 있었다. 그러나 심심이를 개발한 ㈜이즈메이커는 KT와의 협업 이 후 상표권 분쟁에 휘말렸고 그 속에서 성장 동력을 상실해 버렸다. 싸이월드는 SK의 네이트와 통합 과정에서 SNS의 최대 강점인 개방성을 버리고 폐쇄적 수익모델을 추구하며 도태되었다. 그 때의 ‘심심이’는 우리가 지금 그토록 부러워하는 애플의 시리나 혹은 아마존의 AI 알렉사가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지금도 사용자들이 가끔씩 접속해서 보는 싸이월드의 방대한 ‘추억사진 창고’는 국내 영상인식 보안 기술의 기틀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못했다. 그런 기업의 역량이 없었다기 보다는 발전 경로가 차단돼 버렸던 것이다.

인공지능은 방대한 데이터 축적과 다각도의 적용 경험을 요한다. 그리고 이는 결코 단일 기업 역량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대기업과 강소기업 간의 유기적 생태계를 요한다. 심지어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고 하는데, 하물며 인공지능이야 어떻겠는가?

 

5. 옛 말 틀린 거 하나 없다

황금률의 학습법이 아닌 왕도 없는 길에서 인공지능은 비약적 발전을 할 수 있었다. 넘어지지 않으려고 할 때가 아니라 넘어지는 것이 당연하다는 인식을 통해서 휴머노이드 로봇은 마침내 인간다워졌다. 한 우물만 판 엔비디아는 인공지능을 만나 마침내 개화를 시작했고, 백지장을 맞들지 못했던 국내 기업들은 IT 강국이라는 명성이 무색하게 인공지능의 후발주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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