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한 가전제품 뒤의 조력자, 임베디드 보드 ①

[테크월드=정환용 기자] 구글에 ‘보드’를 검색하면 가장 먼저 스노우보드와 스케이트보드가 검색되고, 그 다음이 PC용 메인보드가 보인다. 이미지 제작 툴과 보드게임이 그 뒤를 잇고, 4~5페이지쯤 넘어가야 개발자용 임베디드 보드 정보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마치 그 자체로는 표면에 드러나지 않는 특성이 반영된 것처럼 말이다.

임베디드 시스템은 우리가 평소 게임과 동영상 감상에 주로 사용하는 컴퓨터처럼 범용의 목적을 가지지 않고, 정해진 작업만을 수행하도록 만들어진 시스템을 통칭한다. 일반 컴퓨터처럼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 확장, 교체를 감안하지 않고 성능보다는 안정성이 좀 더 요구된다. 이런 특성 때문인지, 사실 보통 사람들에게는 PC 하드웨어보다 생소한 개념이기도 하고, 임베디드 시스템을 일상적으로 경험하면서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수 목적 기기를 작동시키기 위한 솔루션으로 개발자들이 임베디드 보드를 많이 사용한다. 손바닥에 쏙 들어갈 만큼 아담한 크기의 임베디드 개발 보드는, 언용 운영체제부터 윈도우, 리눅스, 안드로이드 등 다양한 운영체제를 탑재하고 필요에 따른 기능 수행을 시험 운용하는 것을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또한, 임베디드 시스템이 탑재된 기기들이 각각 독립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 네트워크를 통해 상호작용하며 하나의 거대한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 추세다. 필연적으로 단순했던 기기에 명석함이 요구되고, 이를 충족시키기 위해 임베디드 시스템의 성능도 느리지만 조금씩 올라가고 있다.

 

가전제품, 계속 똑똑해질 예정
요구 성능 높아지는 임베디드 하드웨어

기자가 사람 말고 가장 오래 함께한 것이 약 22년간 사용한 냉장고다. 1990년대 중반에는 흔치 않았던 양문형 냉장고였는데, 냉동고 쪽에 제빙기가 있어 여름이 두렵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물론 당시의 여름 날씨가 지금보다는 좀 덜 더웠던 것도 같다). 지난 2016년에 수명을 다해 새 냉장고로 바꾸긴 했는데, 그래도 20년 넘게 큰 고장 없이 제 역할에 충실했던 점으로 볼 때 적어도 지금의 전자제품들보다 훨씬 튼튼했던 건 사실이다.

어떤 제품이든 기능이 너무 많으면 그만큼 고장의 위험도 높아진다. 2000년대 초반까지 사용했던 대부분의 가전제품들은, 해당 기기 본연의 기능 이외에는 별다른 추가 기능이 많지 않았다. 전자레인지는 음식을 데우는 일, 냉장고는 음식을 차게 보관하는 일 말고는 따로 할 수 있는 기능이 없었다. 지금의 시선으로 보면 아쉬울 수 있겠지만, 따지고 보면 그게 당연한 소양이었다. 그러나 머지않아 냉장고가 “사흘 전에 신선야채 칸에 넣어둔 토마토가 슬슬 무르기 시작할 때가 됐으니, 썩혀서 버리지 말고 갈아서 주스라도 해먹어라”는 조언을 해줄 날이 머지않았다. 기능이 다양해지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전자제품들이 똑똑해지고 있는 것이다.

얼음을 만드는 기능 이외에 별다른 추가 기능이 없는 구형 냉장고와, 2017년 출시된 삼성전자의 셰프컬렉션 모델의 기능을 비교해 보자. 양문형의 기본 구조는 비슷한데, 최근에는 문을 상하로 한 번 더 나눠 3~4개의 문을 가진 형태가 인기다. 냉장고 본연의 냉각 기술의 발전에 기반을 둔 성능 상의 차이와 별개로, 냉장고가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많아졌는지를 생각해 보면 된다.

추가된 기능의 대부분은 냉장고 전면에 배치된 모바일 운영체제 기반의 디스플레이 솔루션 덕분인데, 이런 기능의 유무에 따른 활용도의 차이는 사실 크지 않다. 관건은 그 차이가 점점 벌어지고 있다는 점인데, 이를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임베디드 시스템의 사양은 이미 충분하다. 범용 PC가 아니기 때문에 해당 제품에 필요한 기능만을 수행하고 관리할 수 있는 정도면 충분한데, 현재 임베디드 보드에 사용되는 마이크로프로세서의 성능은 최소사양을 넘어 권장사양으로도 충분한 성능을 내준다.

 

임베디드 시스템의 핵심, MPU
임베디드 시스템이 더 많은 기능과 성능을 소화할 수 있는 것은, 그만큼 여기에 사용되는 프로세서가 기기 구동에 요구되는 성능을 내주는 덕분이다. 하지만 브로드컴의 마이크로프로세서(Micro Processor Unit, 이하 MPU) 중 하나인 BCM2837은 쿼드코어 구성에 동작 속도는 1.2GHz다. 우리가 사용하는 데스크톱 PC 프로세서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초기의 MPU는 하나의 칩에 데이터 처리를 위한 레지스터, 수학적 연산을 위한 ALU(Arithmetic Logic Unit), 결과값을 저장하는 flag 등의 구성이 집적되는 형태로 만들어졌다. 과거에는 용도와 범용성에 따라 CPU와 MPU로 나눠 지칭했으나, 지금은 그 경계가 약간 모호하다. 이후 하나의 칩에 프로세서와 메모리, 제어 인터페이스까지 내장된 마이크로컨트롤러가 등장하며 실시간 운영체제나 자동제어에 사용되는 형태로 발전했다. 라즈베리파이, 아두이노, 에디슨 등 일부 범용성을 가진 초소형 컴퓨터가 마이크로컨트롤러에 해당한다.

MPU는 그 사용이나 설정에 사용자가 개입할 여지가 있는 모든 전자기기에 포괄적으로 포함돼 있다고 보면 간단하다. 현재 기자의 주변에 있는 스마트폰, 스마트밴드, 태블릿PC에 사용되고, 다양한 단축키와 키 무한입력 등의 기능을 제공하는 기계식 키보드에도 들어가 있다. TV나 에어컨에도 있고 그 TV와 에어컨을 조작하는 리모컨에도 있다. 게임 콘솔, 자동차의 트립 컴퓨터와 스마트키에도 있다.

컴퓨터용 CPU 하면 인텔과 AMD가 전부라고 할 수 있지만, MPU를 만드는 기업은 이 두 업체 말고도 많다. 브로드컴부터 미디어텍, 삼성전자, 애플, 엔비디아, 퀄컴, 텍사스인스트루먼트 등 많은 기업들이 수많은 전자기기에 사용되는 MPU를 만들고 있다. 애플처럼 자사 기기에만 사용하는 유닛을 만들기도 하고, 브로드컴이나 퀄컴처럼 통신기기용 MPU 공급에 집중하는 기업도 있다.

 

대표적인 마이크로컨트롤러 중 하나인 라즈베리 파이. 영국의 라즈베리파이 재단에서 교육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손쉽게 컴퓨터를 접할 수 있도록 만든 초소형 컴퓨터다. 마이크로프로세서를 포함해 여러 입출력 장치들이 배치돼 있어, 모니터와 연결해 일반 데스크톱 PC처럼 사용할 수도 있다(물론 성능은 아주 저렴한 데스크톱 PC보다 못하다).

 

위 사진의 붉은 원 부분이 라즈베리 파이 2 모델에 장착된 브로드컴의 ‘BCM2836’ 마이크로프로세서다. BCM2836은 2015년 2월 출시된 SoC로, ARM 코어텍스 A7 기반의 900MHz 쿼드코어 프로세서, 250MHz 속도의 GPU, 1GB RAM(GPU와 공유)이 집적돼 있다. 숫자로 보는 성능은 데스크톱에 비하면 꽤나 부족해 보이지만, 이 시스템으로 게임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특정 명령어만 안정적으로 수행하면 되기 때문에 문제없다. 자동차나 냉장고 등의 기기에는 정해진 형태가 아니라 기업에서 자사의 하드웨어 크기와 형태에 맞게 재구성해 장착한다.

 

진입 장벽 낮아진 오픈소스 하드웨어
임베디드 개발 보드는 예전에는 일부 개발자와 엔지니어들의 고유의 영역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지금은 약간의 관심과 지식만 가지면 누구나 접할 수 있을 정도로 보편화됐다. 형태와 성능은 모두 다르지만, 본 기사의 이미지로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 것이 개발 보드의 생김새다. 실제로 대부분의 임베디드 시스템의 기본 구조가 개발 보드와 같은 맥락으로 만들어진다. 전력 소모도 아주 적고 크기도 적용 기기에 따라 아주 작게 만들 수 있어 활용 범위가 굉장히 넓다. 개인이 사용할 수 있는 개발 보드 몇 종류를 알아보자.

 

저가형 보드 대중화의 주역, 라즈베리 파이
영국의 라즈베리 파이 재단에서 만든 동명의 초소형 컴퓨터 ‘라즈베리 파이’의 가장 큰 특징은 가격이다. 크기 대비 상당한 성능을 내 주는 PC의 가격대는, 쿼드코어 마이크로프로세서를 탑재한 라즈베리 파이 3 모델 B가 4만 원대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의 영역이었던 개발 보드의 장벽이 무너지고, 대중적인 개발 보드가 시장에 나오기 시작한 것이 라즈베리 파이 덕분이다.

라즈베리 파이는 기본적으로 프로그래밍을 교육하기 위해 개발됐다. 기기에 포함돼 있는 ‘파이썬’, ‘스크래치’ 등의 프로그래밍 도구를 배울 수 있고, 카메라나 각종 센서를 제어하는 컨트롤러로 활용할 수도 있다. 라즈베리 파이를 데스크톱 PC처럼 사용하기는 어렵지만, 그렇다고 아예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리눅스를 설치해 웹서핑이나 문서작업에 활용하는 건 기본이고, 개인 서버나 미디어 스테이션으로도 사용할 수 있다.

 

비교적 신제품인 ‘라즈베리 파이 3 모델 B’. 1.2GHz 속도의 ARM 64비트 쿼드코어 프로세서 기반으로 1GB DDR2 RAM이 탑재됐다. 이 모델부터 802.11n 무선랜과 블루투스 4.1을 지원한다. LAN 포트 1개와 USB 포트 4개를 사용할 수 있고, 카메라·디스플레이 인터페이스를 지원한다. 저장장치는 마이크로SD카드를 사용한다. 공식 가격은 35달러, 국내에선 4만 원대에 구입할 수 있다.

 

원래의 크기도 작지만, ‘라즈베리 파이 제로’ 모델의 크기는 가로세로 65x30mm로 껌 두 개를 뉘인 정도 크기밖에 안 된다. 사진의 왼쪽 하단에 있는 HDMI 포트로 그 크기를 짐작해볼 수 있다. 여기 장착된 브로드컴 BCM2835는 1GHz 속도로 동작하고, 512MB DDR2 RAM을 지원한다. 저장장치는 마이크로sd카드를 사용하고, 미니 HDMI 포트를 통해 최대 1080P 60fps 재생도 지원한다. 그리고 가격은 무려 5달러. 정말 매운 작은 고추다.

 

외부 전자장치 통제에 제격, 아두이노
2005년 이탈리아의 학생들이 자동전압조정기(Auto Voltage Regulator, 이하 AVR)을 기반으로 고안한 개발 도구 아두이노는, 여러 개의 센서와 신호를 주고받는 전자장치 통제에 사용하기 좋은 보드다. 통합 개발 환경을 제공하고, 소프트웨어 개발은 물론 어도비 플래시나 맥스 등의 소프트웨어와도 연동할 수 있다.

megaAVR 시리즈 마이크로컨트롤러를 주로 사용하고, 기계어 코드는 시리얼 통신으로 이뤄진다. 마이크로컨트롤러에 부트로더가 장착돼 있으면, 전원을 넣는 동시에 코드가 실행돼 원하는 동작을 실행할 수 있다. 또한, 아두이노 보드는 수행할 수 있는 기능이 제한적이지만 센서나 스위치 등의 입출력 장치가 필요할 때는 2개 이상의 보드를 병렬 연결해 여러 기능을 제공하는 모듈을 연결할 수 있다.

 

아두이노 메가2560 R3. 256KB 플래시 메모리를 가진 ATmega2560 마이크로컨트롤러 기반의 보드다. 디지털 입출력 핀 54개, 아날로그 입력 16개, 하드웨어 시리얼 포트 4개, 16MHz 크리스탈 오실레이터, USB, ICSP 헤더를 지원한다.

 

다양한 운영체제 지원, 라떼판다
임베디드 보드 중에서도 고사양 하드웨어에 속하는 라떼판다는, 인텔 체리트레일 프로세서를 주로 사용하는 윈도우 10 싱글보드 컴퓨터다. 윈도우 10이 기본 포함돼 있다는 점에서 성능을 짐작할 수 있다. 저가형 일반 데스크톱과도 견줄만한 성능에, RAM과 저장장치는 선택적으로 확장도 가능하다. 윈도우 10을 비롯해 안드로이드, 우분투, 아두이노 등의 운영체제를 지원하고, 개발 환경도 마이크로소프트 비주얼 스튜디오, 자바, 파이썬, PHP 등을 사용할 수 있다. 호환되는 액세서리도 무척 다양하다. 가격대는 다른 제품군보다 약간 비싼 10만 원대.

 

인텔 쿼드코어 1.8GHz 체리트레일 프로세서 탑재, 윈도우 10 설치, RAM 기본 2GB(4GB까지 확장 가능), 저장장치 기본 32GB(64GB까지 확장 가능), 아두이노 호환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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