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월드=정환용 기자] 지난 2월경, 잠잠하던 AMD 라데온 RX500 시리즈 그래픽카드의 가격이 요동을 치기 시작했다. 인터넷 최저가 33만 원대였던 모 브랜드의 라데온 RX580 그래픽카드는 지금 구입하려면 65만 원 이상이 필요하다. 평균가 61만 원대였던 GTX1070이 지금은 85만 원을 주고도 구하기 어렵다. 주요 그래픽카드의 국내 총판업체들이 가격 안정을 위해 물량 공급에 힘쓰고 있지만, 현재 PC용 그래픽카드 시장은 가상화폐 채굴 덕분에 ‘초토화’ 상태다.

 

비트코인, 이더리움, 리플, 모네로… 최근 다시 큰 이슈로 회자되고 있는 가상화폐가 그 원인이다. 2009년 처음 등장한 비트코인을 시작으로 수십여 종의 가상화폐가 성행하고 있다. 가상화폐는 일명 암호화 화폐(CryptoCurrency)로, 복잡한 수학 문제를 풀어 생성되는 화폐를 모으는 것으로, 이를 ‘채굴한다’(mining)는 표현을 사용한다. 가상화폐 초반에는 중앙처리장치(CPU)를 이용했지만, 더 빠르고 많은 연산능력이 필요해지면서 그래픽카드의 GPU를 사용하게 됐다. 현재 시장에서 그래픽카드를 제값에 구하기 어려워진 점도 이 때문이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가상화폐 채굴에 사용되는 그래픽카드를 ‘광산에 끌려간다’고 빗대 표현하기도 한다. PC방을 폐업하고 채굴장으로 업종을 변경한 곳도 적지 않고, 용산에선 돈다발을 싸들고 그래픽카드를 사러 다니는 사람들 봤다는 목격담도 심심찮게 들려온다.

그래픽카드 품절 현상이 벌어진 지 두어 달 째, 벌써부터 속칭 ‘광산에 끌려갔던’ 그래픽카드들이 중고 매물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일명 ‘광산 운영자’들은 24시간 계속 100%로 가동되며 일반적인 사용 기준을 훌쩍 넘긴 중고 제품들을 ‘계속된 사용으로 연산 속도가 좀 더 향상됐다’는 말도 안 되는 망언까지 섞어가며 팔아넘기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지금의 그래픽카드 시장에 대해 “가격이 안정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새 제품을 사는 것을 추천한다”며, 지금 중고 시장에 나와 있는 매물은 되도록 피할 것을 권고했다.

 

가상화폐, 결국은 무너질 가능성 ↑
최근 몇 개월 사이 가상화폐 채굴 사업에 뛰어든 사람들 대부분이 가상화폐 시장의 두 번째 폭풍을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비트코인은 처음 거래된 2010년 4월에는 1코인의 가치가 14센트(한화 약 160원) 정도에 불과했으나, 7월 4일 현재 시세는 한화 약 312만 원이다. 몇 년 사이에 화폐 가치가 195만% 폭등한 것이다. 가상화폐 채굴이 유행처럼 퍼지면서 지난 5월 470만 원에 육박하기도 했다. 이밖에도 이더리움(33만 원대), 대시(21만 원대) 등 10여 종의 가상화폐가 온라인에서 거래되고 있다. 게다가 각종 화폐마다 정해진 수량이 있고 공급량은 갈수록 줄어들게 돼 있어, 채굴에 걸리는 시간과 수확하는 양도 점점 줄어든다. 최근에는 가상화폐 채굴에 더 많은 사람들이 뛰어들고 있어 수확량이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는 추세다.

가상화폐는 온라인 전자상거래에서 간단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점과 함께, 경제 추세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 대안 화폐가 될 수 있다는 점은 장점이다. 더불어 거래 기록이 블록(Block)으로 묶이고 이것이 연결(Chain)되면, 사용자들 모두가 같은 공공 거래 장부(Public Ledger, 일명 BlockChain)를 가지게 돼 오류나 누락에 대한 위험이 획기적으로 줄어든다. 거래 방식도 은행 등의 중개를 거치지 않고 판매자와 구매자가 직접 접촉하는 방식이어서 일반적인 은행 거래보다 간편하다.

문제는 상당수의 가상화폐가 불법적인 목적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은행 계좌처럼 추적하기가 어려운 점이 가상화폐의 장점인 동시에 맹점도 된다. 컴퓨터 이용자들을 공포에 떨게 만드는 랜섬웨어의 배포자는 인질(파일)을 풀어주는 대가로 비트코인을 요구한다. 최근 모 웹호스팅 업체가 랜섬웨어에 당해 약 13억 원 상당의 비트코인을 해커에게 지불했지만, 그마저도 데이터를 100% 복구하지 못한 사례도 있었다. 가상화폐를 거래하는 온라인 거래소에서 고객 정보가 유출돼 수십억 원의 피해를 입기도 했다. 경찰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마약 대금을 비트코인으로 지불하는 등 화폐를 악용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결국 가상화폐로 큰 이득을 보는 것은 발생 초기 저렴한 가격에 수십, 수백 코인 단위로 사뒀던 사람들, 그리고 채굴을 위한 그래픽카드를 판매하는 총판과 소매업체들, 마지막으로 가상화폐 거래 창구를 제공하며 수수료를 챙기는 중개업체인 온라인 거래소들이다. 기존의 데스크톱 PC로도 채굴할 수 있었던 초창기와 달리, 현재 가상화폐 채굴로 이득을 보려면 적어도 10 단위 수량의 그래픽카드나 주문형 USB 반도체로도 코인 1개를 캐기 어렵다. 사람이 많이 몰리니 더 높은 난이도의 연산이 요구되고, 여기에 캘 수 있는 채굴량은 한정돼 있어 채산성은 점점 줄어든다. 전형적인 레드오션화 절차를 밟고 있다.

바우처나 상품권처럼 처음부터 제대로 시장 형성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가상화폐는 결국 ‘새로운 플랫폼’이란 단어로 포장돼 생산자와 구매자 시장 모두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는 셈이다. 화폐를 캐내기 위한 생산자 입장에서나, 이를 이용하려는 소비자 입장 모두에서 가상화폐가 긍정적인 영향을 가져오는 경우는 많지 않다. 가상화폐란 콘텐츠가 새로운 거래 방식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만들 수 있다는 주장도 있지만, 그 수집 방식은 기존의 화폐처럼 정당한 노동의 대가라고 볼 수 없다. 화폐와 비슷하게 채굴량의 한계점을 설정해 가격대를 유지할 수도 있지만, 상당히 특수한 장비와 장치를 이용해야 한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단점이다. 결국 가상화폐가 현재의 화폐 거래를 대체하는 시대는 오지 않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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