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월드=정동희 기자] "의료 문턱을 낮추고, 최상의 진료를 한국에도 받을 수 있게 하고 싶다."

IBM의 인공지능 기반 암 진단 프로그램 ‘왓슨 포 온콜로지(Watson for Oncology)’ 가 2016년 말부터 국내에 도입돼 실전에 투입됐다. 국내에 처음 왓슨 포 온콜리지를 도입한 가천대 길병원의 이언 인공지능기반정밀의료추진단 단장은 “의료 문턱을 낮추고, 한국에서도 최상의 진료를 받을 수 있게 하고 싶었다”고 왓슨의 도입 이유를 설명했다. 

왓슨은 담당주치의가 환자를 진료 후 왓슨 포 온콜로지에 환자 정보를 입력해 왓슨이 분석, 제안한 의견을 확인한다. 이 때 왓슨은 각각의 치료 방법에 등급을 매겨 제안하고, 근거를 함께 제시한다. 이렇게 모아진 다양한 정보를 바탕으로 주치의는 다양한 진료과 전문의들의 의견을 청취, 종합한 후 최상의 치료 계획을 선별한다.

인공지능 의료시스템인 왓슨은 2012년 처음 MSKCC에서 ‘레지던트’ 생활을 시작했다. 290종의 의학저널, 200종의 교과서, 1200만 쪽에 달하는 전문자료를 학습했다. 이는 일반적으로 의사가 평생에 습득하는 데이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방대하다.

인공지능 의료시스템 도입의 난관

서두에서 언급한대로 인공지능 의료시스템 ‘왓슨’의 장점은 명확하다. 그러나 의료 시스템 특성상 사람의 생명에 직결된 만큼 실제 의료현장에 도입하는 것에 대해서는 보수적인 측면이 있다. 이 때문에 왓슨 도입 초기당시 병원 내부의 반발과 법안 때문에 실전 도입이 지체됐다. 이언 단장은 “아직 국내에서 검증되지 않은 인공지능 의료시스템을 먼저 도입한다는 것은 예상대로 쉽지만 않았다”며 “소수 의사들은 인공지능 시스템을 경쟁자로 인식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길병원이 왓슨 도입을 검토했던 2014년에는 의료정보를 클라우드 데이터로 공유하는 것은 불법이 이었다. 클라우드 기반 플랫폼 왓슨은 이런 이유들로 계속 지체되다 작년 말 규제완화로 도입할 수 있었다. 사실, 환자입장에서도 아직 국내에 검증되지 않았고, 미국기반의 환자의 데이터로 진단 처방하는 것은 다소 꺼림칙할 수도 있다. 특히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최신 기술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많고 생명과 관련될수록 보수적인 성향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이에 대해 이언 단장은 “생각보다 암 진단에 있어 왓슨을 활용하는 것에 대해는 매우 호의적이다. 암환자분들은 절실함에 여러 병원에서 진단을 받고, 또 다른 곳에서 진단을 받는 경우가 많다. 애당초 최근 길병원을 찾아오는 환자의 대부분은 인공지능의 진단을 받아보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호의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 이언 단장은 왓슨과 의사가 내린 처방에 대해 환자에게 선택권을 주었을 때(처방전의 따른 효능의 차이는 없음), 많은 환자들이 인공지능을 택했다고 부언했다.

인공지능 의료시스템 활용 범위

실제 의료현장에서 왓슨은 모든 암에 활용되는 것은 아니다. 몇 가지 정해진 암들을 진단하는데, 왓슨이 가장 처방하기 좋은 케이스를 위주로 고른다. 또한, 아직 의사마다 정책이 다르기 때문에 매번 왓슨에게 조언을 구하는 의사들도 있지만, 필요한 경우에만 활용하는 경우도 많다. 이언 단장은 “왓슨도 아직 진화 단계다보니 모든 암을 커버할 순 없다. 폐암이나 비교적 까다로운 암들에 대해 왓슨을 이용해 처방 한다”고 말했다.

왓슨을 실행중인 왓슨 코디네이터

인공지능 의료시스템의 가치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암 환자들은 10군데 이상의 병원에서 진단을 받는 경우도 있다. 또한, 제도상의 문제로 흔히 ‘큰 병원’이라고 불리는 병원에 집중되다 보니 환자들의 대기 시간이 길어지고, 의사 1인당 환자가 증가하다보니 의사들의 피로도가 높아져 진료의 질이 낮아질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이언 단장은 “어느정도 수준의 의사들 실력은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오히려 피로도가 높은 의사들이 진료의 질이 낮아질 수 있다”며 “단순 예로 비슷한 실력의 운동선수들끼리의 경쟁에서 피로도가 높은 선수는 질수 밖에 없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말했다. 

사실, 일반적으로 환자들은 왓슨을 도입하기 전과 도입후의 변화에 대해 궁금할 것이다. 이에 관해 이언 단장은 “왓슨 도입 후 처방 정밀도가 어느 정도 상승한건 사실이다. 다만 왓슨 도입전과 비교해 제도상의 차이나 처방약에 대한 차이가 있기 때문에 단순 비교는 무리가 있다. 왓슨 도입전의 질병조건을 왓슨에 입력해봤을 때 70%가 도입전과 동일한 처방을 내렸다. 나머지 30%는 제도나 처방약에 대한 기준이 나라마다 다르기 때문에 의미가 크지 않다”며 왓슨 도입 후 처방 정밀도의 상승은 있으나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왓슨을 통해 나온 처방을 환자에게 설명하고 있다.

인공지능 의료시스템의 미래

사람들은 인공지능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기대를 갖고 있다. 특히 의료시스템 분야에 도입된 인공지능은 현재까지 불가능 했던 병의 수술과 치료, 다소 과한표현으로는 불로장생의 꿈까지 꾸게 한다. 그렇다면 지금의 왓슨은 어느 정도 단계까지 온 것일까. ‘알파고’처럼 이세돌 9단과 커제 9단을 물리칠만한 ‘신의 한수’를 보여 준적이 있을까? 이언 단장은 “아직 신의한수라고 표현할만한 처방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왓슨은 발전을 하고 있는 시스템이고 매우 발전의 속도가 빠르다. 인간은 정도 수준의 의사를 만들기 위해서는 최소 10년 이상이 소요된다. 그러나 왓슨은 1년도 걸리지 않는다”며 “분명 앞으로는 신의 한수가 나올 것으로 본다”고 힘주어 말했다. 

우리가 흔히 아는 것처럼 인공지능 의료시스템은 ‘빅데이터’가 생명이다. 즉 환자의 정보와 유전체 데이터가 쌓이면 쌓일수록 인공지능 의료시스템은 정교해진다. 그러나 데이터와 기술의 발전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이에 대해 이언 단장은 “기술의 발전과 데이터는 시간이 지나면 발전하게 돼있다. 문제는 제도다 특히 우리나라는 기술의 속도를 제도가 따라가지 못한다. 물론 제도가 기술을 앞서나가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사람의 생명에 관한 문제는 좀 더 유연성을 발휘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 까지 보여진 인공지능은 극히 일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인공지능 진료시스템과 더불어 인공지능을 이용한 신약이 개발된다면 인간의 건강수명은 놀라울 정도로 증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공지능 공룡기업에 대한 단상

인공지능 의료시스템에 대해 한 가지 고려해야 할 사항이 있다. 바로 비용문제다. 미국의 MD 앤더슨 암센터는 IBM 왓슨과의 계약을 종료했다. 물론 특별한 기술적 하자가 있어 계약이 종료된 것은 아니다. 금액적인 문제가 가장 컸다. 앤더슨 암센터의 왓슨 관련 비용지출중 약 700억 원 가량이 앤더슨 암센터 이사회에 승인 없이 지출된 것이다. 현재 인공지능관련 의료시스템은 환자에게 돈을 청구할 수 없다. 즉 상용서비스가 아니다. 또한, IBM은 앤더슨 암센터에 ‘왓슨’을 베타테스트한 것이다. 그런데 도리어 앤더슨 암센터는 IBM에 돈을 지불한 것이다. 이런 이유들로 계약은 해지됐다. 

인공지능 의료시스템 왓슨을 길병원에 이어 많은 병원들이 도입 하거나, 앞으로 도입예정에 있다. 그런데 IBM은 왓슨의 데이터베이스와 프로그램의 전반적인 소스를 병원에 제공하고 있지 않다. 병원은 단순히 IBM이 오픈해준 클라우드에 접속, 환자들의 정보를 입력해 왓슨의 처방을 받는 것에 불과하다. IBM은 아직 ‘완벽’하지 않은 기술을 세계 여러 국가의 병원을 상대로 테스트하며 환자정보를 돈을 받으면서 공급받고 있는 것이다. 실제 이 문제는 왓슨을 도입한 병원의 홍보효과나 기타 여러 경제적인 측면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인공지능 의료시스템을 선점한 기업들이 방대한 환자데이터를 독식하게 된다면 미래에 어떤 일이 벌어질까? 만약 현재 무료인 인공지능 처방이 차후 ‘완벽’한 진화를 거친 후 막대한 금액의 처방료를 받는다면? 데이터를 독점한 공룡기업은 나날이 성장할 것이고 기술은 점점 발전할 것이다. 하지만 그 ‘완벽’한 기술은 결국 소수의 전유물이 될 수도 있고, 우리가 기대하는 의료서비스의 민주화는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 현재 인공지능 의료시스템 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IBM의 행보와 왓슨의 정책에 대해 우리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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