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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VR업계의 ‘역도산’, 씨자일(Seagile)VR은 미래 사회의 ‘바퀴’가 될 것, 오타쿠 문화의 일본이야말로 가상 현실을 그릴 수 있는 최적 조건: VR 기업 씨자일(Seagile) 문승환 대표, 박은직 기술개발팀장 인터뷰
박지성 기자 | 승인 2017.06.20 09:08

[EPNC=박지성 기자] 한 때, 전 세계 사람들을 TV 앞으로 불러 들였던 스포츠가 있다. 바로 프로레슬링이다. 그리고 일본인들에게 프로레슬링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가 하나 있다. 그의 이름은 모모타 미쓰히로, 한국명 김신락, 그리고 대중이 기억하는 이름 ‘역도산’. 한국에서 설경구가 분하며 영화로 만들어 지기도 했던 전설적 인물인 그는 ‘일본 프로레슬링의 아버지’라 불린다. 일본의 프로레슬링 산업 자체의 기반을 닦은 것으로 평가 받는 당시 역도산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했다. 그의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던지, 1963년에 거행된 역도산의 장례식은 국장급에 준하는 추모인파가 몰렸다.

마치 프로레슬링이 그랬던 것처럼, 세계 도처에서 VR의 인기가 전 세계적으로 뜨겁다. 일본도 예외일 수는 없다. 그런 일본 VR 업계에서 강렬하게 주목 받고있는 한 강소기업이 있다. 20여 명에 불과한 소규모 인력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내로라 하는 기업들이 VR 솔루션 구현을 위해 이 기업을 찾고 있다. 그리고 마치 역도산처럼… 한국계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홀연히 일본 VR 업계에 나타나 그 이름을 떨치고 있다. 일본 VR 산업의 역도산 같은 씨자일(Seagile)을 동경 아키하바라에서 만났다.

사진1] 역도산은 일본의 프로레슬링의 시작과 끝이었다.

기자] 독자 분들의 이해를 위해 씨자일(Seagile)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부탁한다.

문승환 대표(이하 문)] 한국 기자가 한국 사람 만나러, 동경까지 오시느라 고생이 많았다. (웃음) 처음 일본에 들어온 것은 약 20여년 전 일이다. 당시에는 오픈소스 개발자 신분으로 IBM 자회사의 일본 진출을 돕기 위해 일본에 들어오게 됐다. 이후 일본 내 개발자들과 연이 닿아 계속 이곳 에서 일을 하게 되었고 2008년에 Seagile을 설립하며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하게 됐다. 18명의 직원들과 함께 하고 있고, 현재 주요 사업은 1) VR 솔루션 개발, 2) 오픈소스 기반 금융계 시스템 개발 3) 그리고 PLM(Production Life Cycle) 솔루션과 같이 3가지로 구성돼 있다.

VR 사업은 2013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됐다. VR이 대중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한 것이 2014년 페이스북의 오큘러스 인수부터였으니 꽤 빠른 시작이었다. 일반 대중들이 생각하는 VR은 주로 게임 등 B2C을 연상하기 쉬운데 우리는 그런 부분보다는 B2B 솔루션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특히 자연재해가 많은 일본의 특성 상 가상현실을 기반으로 한 재해 상황 대처 등의 솔루션과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개발/공급에 수요가 많은 편이다. 지금 현재는 소프트뱅크 그리고 구체적으로 이름을 밝힐 순 없지만, 일본 선도항공사 등과 사업 논의가 진행 중에 있으며, 최근에는 다수의 한국 VR 기업들이 협업을 위해 방문하기도 했다.

 

사진 2] 씨자일의 문승환 대표(우)와 박은직 팀장(좌)

기자] 20명도 채 되지 않는 규모에 비해 업계 내 존재감이 상당하다. 비결이 무엇인가?

문] 감사하게도 역량 있는 친구들이 함께 해 주고 있다. 사내에 유지 시마다(Yuji Shimada)라는 친구가 있다. 이 친구는 전 세계 4,000명, 일본에 260여 명 밖에 없는 마이크로소프트(MS)의 MVP(Most Valuable Professional) 중 한 명이다. 뿐만 아니라 일본 내 VR 전문가 10인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우리가 본격적으로 VR 사업을 시작하기 전부터 시마다는 블로그 혹은 사적인 모임 등을 통해서 VR에 관심을 기울였다. 사실 VR 사업을 처음 시작하게 된 것도 시마다 개인 취미에서 출발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사히로 스기모토(Masahiro Sugimoto)도 빼 놓을 수 없다. 3D 그래픽을 브라우져 상에 구현하는 WEB GL이라는 기술이 있는데 스기모토는 이 분야에서 일본 Top으로 꼽힌다. 개인적으로 각종 세미나 혹은 컨퍼런스에 초빙될 정도로 실력을 인정 받은 개발자다. 이런 친구들이 밤낮으로 일을 재미있게 하고 있으니, 좋은 성과가 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실제로 이런 구성원들 덕분에 회사가 PR을 별도로 하지 않아도 업계 내에서 외연을 넓힐 수 있었고 상당히 탄탄한 네트워크를 가지게 됐다. 회사 이름보다 더 알려진 개발자를 둔 것이 비결이 아닐까 생각한다.

박은직 팀장(이하 박)] 좋은 인력이 있기에 회사가 성장한다는 말은 당연하게 들릴 수도 있겠다. 대표가 아닌 개발자 입장에서 조금 첨언하자면, ‘개발자 최우선주의’ 문화가 굉장히 강하다. 최근 시마다가 사무실 카펫이 낡아서 오래 작업하고 있으면 기침이 나온다는 말을 지나가듯 한 적이 있었다. 그 얘기를 듣고 대표님이 주말에 혼자 나와 사무실 카펫을 전부 교체한 적이 있다. 상당히 고된 작업이었을 텐데, 다른 직원들을 시킨 것도 아니고 본인이 그 일을 다 했다. 사실 역량 있는 직원들은 언제든지 많은 연봉을 약속 받으며 이직할 수 있다. 그래서 그들에게 많은 연봉은 이직의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오히려 본인이 얼마나 편한 마음으로 일할 수 있는가, 그리고 내 업무가 얼마나 소중히 여겨지고 있는가가 더 중요한 판단 요소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점에서 씨자일이 강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기자] 일본까지 왔는데, 좋은 얘기만 할 수는 없다. 최근 중국에서는 300여 곳에 이르던, VR 업체가 도산하여 10여 곳만이 살아 남았다. VR 시장에 대한 뜨거운 관심만큼이나 거품이라는 회의론도 많은데…

문] 우리는 확신이 있다. 급성장하는 시장이니만큼, 많은 기업들이 뛰어든다. 그러나 그 기업들이 모두 성장할 순 없다. 도태와 실패는 시장의 당연한 원리다. 그러나 이것은 기업의 실패이지 시장 혹은 산업 자체의 실패는 아니다. 유사한 사례로, 태양광 산업을 예로 들고 싶다. 고유가 시기에 친환경 에너지는 많은 관심을 받았고 태양광 역시 그랬다. 그러나 몇 년 뒤 찾아온 저유가 기조는 많은 태양광 업체들을 도태시켰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태양광 산업이 도태되었나? 그렇지 않다. 공급과잉 상황 속에서 기업들은 각고의 노력을 통해 비용 절감과 품질 혁신을 이뤄낼 수 있었고, 최근 태양광 발전은 오히려 유가 하락의 강력한 요인이 될 정도로 원가 경쟁력을 확보하게 되었다.

VR 산업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시장 상황에 따라 제공되는 솔루션과 서비스의 형태와 모습은 달라질 순 있지만, 우리 생활 전반을 바꾸는 실질적 성과가 계속 나오고 있다. 최초에는 스마트폰의 보급과 함께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 AR)과 대중의 이목을 끌었다. 그 이후에는 가상현실(Virtual Reality: VR)로 다시 흐름이 바뀌었고, 최근에는 AR과 VR의 단점을 보강한 혼합현실(Mixed Reality: MR)이 성장 중이다. 어플리케이션 측면의 변화도 주목할 만하다. 기존의 게임 등 오락적 요소에서 의료 혹은 중장비, 고가 제품의 매뉴얼 등 고부가가치 영역으로의 전환이 이뤄지고 있다. 고소/폐소공포증 치료 분야 활용 사례가 증가하고 있고, 중장비 혹은 대형 산업용 기기의 매뉴얼을 VR로 구현하는 예도 증대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시장 추세와 더불어 마이크로소프트등 거대기업들의 신제품 출시가 이어지며 실질적 성과가 나오고 있다. 이 시장은 분명 성장할 것이고 우리의 생활 방식 자체를 바꾸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사진3] 매직리프가 체육관 내 고래를 불러 들이며 혼합현실(MR)을 시현하고 있다

기자] VR 산업이 우리 생활 전반을 바꾸게 될 것이라 했는데, 잘 와 닿지 않는다.

박] 인류 역사를 바꾼 위대한 발명품 중의 하나가 바로 ‘바퀴’다. 바퀴는 인류의 활동 영역을 재정의했고, 운반 가능한 화물의 무게를 근본적으로 바꿨다. 하지만 ‘바퀴’가 매번 동일한 모습은 아니었다. 최초에는 굴림대에서, 바퀴 살이 있는 나무바퀴, 튜브형 타이어, 궤도 등으로 계속 진화를 이어 나갔다. 그러나 인력거에도 자동차에도, 심지어 우주 왕복선에도 바퀴는 달려있다. 바퀴로 인해 인류의 영역은 우주까지 넓어졌다. VR 역시 지속적 변화를 겪겠지만, 그 역할은 미래사회의 또 다른 ‘바퀴’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VR은 과거의 바퀴가 그랬듯, 기존의 인류가 마주해야 했던 ‘공간적 제약’을 없애고 수 많은 산업을 해체할 것이다.

실생활 중에서 쉽게 생각 가능한 예가 바로 모델 하우스다. 건설회사들이 아파트를 지으면, 당연히 모델하우스 건설 및 홍보는 당연한 프로세스였다. 그러나 모델하우스는 많은 비용을 수반한다. 실제 아파트와 동일한 공간 면적에 인테리어 혹은 가구 등을 배치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고객들도 먼 거리 이동을 감수하며 모델 하우스를 직접 방문해야 했다. 그러나 VR이 보급되면 모델하우스는 불필요한 비용 항목이 된다. 굳이 고객들이 모델하우스를 방문할 필요 없이, 실제 공간을 체험할 수 있고 또 건설사는 하나의 VR 모델하우스 플랫폼을 통해서 전국 각지에 새로이 만들어지는 신규 건축물을 경험하게 할 수 있다. 실제로 IKEA가 그랬듯, 일본 내 40년 전통을 가진 오츠카 가구는 최근 AR을 바탕으로 고객들이 자택 내 가구를 배치했을 때, 어떤 공간적 여유와 이미지를 갖게 될 것인지 사전에 체험할 수 있게 하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가구점이 존재할 이유가 점점 사라지는 것이다. 모델하우스와 가구점뿐일까? 아니다. 자동차 회사의 쇼룸도, 백화점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해당 산업들은 급속히 사양 산업화 되고 있다. 즉 VR은 장기적 관점에서 ‘체험을 위해 같은 동일 공간에 있어야 한다’는 전제를 가진 모든 산업을 해체시킬 것이다. VR을 하나의 개별적 산업으로 이해해서는 안 되며 근본적 ‘인프라’의 변화로 바라봐야 하는 이유다.

기자] 향후 VR 산업에서 선도주자가 되기 위한 핵심 역량이 있다면 무엇일까?

박] 실제 개발 현장에서 느끼는 가장 중요한 역량이 있다면, 그건 ‘인문학적 이해’ 역량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픽 구현력 등 기술적 역량은 모든 VR 업체들이 전력을 다해 개발하고 있다. 현재는 다소 차이가 있더라도 긴 호흡으로 보면 모든 업체들이 유사한 수준에 도달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들 그 분야의 기술에는 자신이 있기 때문에 사업을 시작했테니. 그렇기 때문에라도 기술이 아닌 인문학적 이해가 시장에서의 우위를 결정짓는 차별적 역량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예컨대, 우리는 스마트폰과 컴퓨터를 쓰면서 우측 상단의 ‘X’ 표를 보게 되면 이 기호가 창을 닫는 명령어라는 것을 알고 있다. ‘ß’ 기호는 이전 화면으로 돌아간다는 것 역시 큰 사고 없이 연상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 VR에는 이런 통일된 UI/UX가 존재하지 않는다. 가상 혹은 증강된 현실에서 사람들이 행동과 몸짓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무엇이 최적화 된 UI/UX인지 우리는 모른다. 단적인 예로 특정 화면에서 ‘Yes’라는 명령어를 입력할 때, 일반적으로 ‘Okay’라는 손 동작을 하면 된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수신호는 브라질에서는 엄청난 욕설을 의미한다. 또 손동작이 UI의 전부가 아니다. 고개를 좌우로 흔드는 제스쳐가 ‘취소’를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단순히 사실적 상황을 구현해 내는 것이 다가 아니다. 사람들이 처해져 있는 상황에서 어떤 행동양식을 가지고 외부를 대하는지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기자] 일본 VR 산업 생태계가 가지는 특징이 있다면?

문] 일본 산업을 설명하는 대표적 단어가 있다. 좋게 말해 장인 장신 혹은 ‘모노즈쿠리(ものづくり)’, 나쁘게 말하면 오타쿠(オタク)다. 오타쿠라는 단어가 다소 부정적으로 해석되긴 하지만, VR만큼 오타쿠로서의 역량이 필요한 분야가 또 있을까? VR은 말 그대로 가상현실이다.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본인의 상상과 사고 속에서 존재하는 ‘세계관’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세상이다. 그런 점에서 VR은 기본적으로 오타쿠적 사고와 마인드를 요구한다. 끊임없이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하고 그 세계에 의미를 부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특정 분야에 대한 매몰이 용인되는 사회적 여건을 갖춘 일본은 VR 생태계 구축에서 매우 유리하다.

사진4] 수십 년간의 자발적 열정을 지닌 이들은 오타쿠가 아니라 전문가이다

제품/서비스 품질적 측면에서도 오타쿠적 기질은 매우 긍정적이다. 일반적으로 작업의 산출물은 ‘조직 구성원 혹은 상사가 인정하는’ 외부적 기준에 맞춰진다. 그러나 이들은 다르다. 그들이 보는 완성의 기준은 ‘내가 됐다’라고 느낄 때이다. 굉장히 엄격한 내부 기준에 맞추어 작업을 진행하다 보니 완성도가 매우 높다. 실제로 회사 내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중 납기일과 품질이라는 문제에 맞닥뜨린 적이 있다. 조급한 마음에 팀원들에게 ‘이 정도면 충분한 것 같다.’고 얘기를 한 적이 있다. 그 때 개발자들의 반응은 ‘그렇게 만들 바에야 안 만든다.’였다. 아마도 이런 고집스러움이 일본 VR 산업을 다른 나라와는 다르게 만드는 핵심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기자] 마지막으로 VR 저변 확대를 위해 독자 분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박] 가상현실, 증강현실도 결국은 현실이다. 머릿속으로만 상상하거나 혹은 이야기를 듣거나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현실은 결국 체험할 때 오롯이 현실이 된다. 따라서 주변의 다양한 이벤트 등을 통해서 VR을 직접 체험해 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근본적인 사고의 전환을 다시 한번 당부하고 싶다. ‘공간적 제약’이 완벽히 사라지고 내 눈 앞에 모든 것들이 존재하는 세상은 반드시 온다. 이런 믿음과 철학이 있어야 한다. 그게 VR을 구현하는 우리의 마음가짐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VR#AR#MR#일본

박지성 기자  park.jisung@techworl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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