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업계 사상 최대 M&A, 인수가격/시너지/승인 등 높은 산 넘어야...

[테크월드=박지성 기자] 한 남녀가 결혼을 목전에 두고 있다. 워낙 빼어난 외모와 인품을 가진 두 남녀의 만남인지라, 결혼 발표 직후 주변의 모든 이들이 관심을 기울였다. 그러나 조금 지나 두 사람의 사정을 알고 보니 조금 심상치 않다.

1) 결혼식 비용이 어마어마한데, 이런 저런 문제로 비용은 더 올라갈 것 같고

2) 남자와 여자가 살아온 환경과 성격이 상당히 다른데다가

3) 마지막으로 부모님 등 주변의 상당한 반대가 예상되고 있다.

과연 이 결혼 행복할 수 있을까?

 

퀄컴과 NXP의 결합은 업계를 뜨겁게 달궜다

2016년 10월, 퀄컴이 NXP를 인수한다는 소식에 반도체 업계는 뜨겁게 달아올랐다. 총 금액 470억 달러, 한화 53.8조에 달하는 업계 최대 규모의 ‘빅딜’이었다. IT 업계 전체로 봐도 역대 두 번째 규모의 M&A였다. 규모도 규모지만, M&A 성격이 더 많은 관심을 끌었다. 반도체의 기존 주력 시장인 통신 부문 최강자 퀄컴과 향후 고성장이 기대되는 IoT, 자동차 부문 신흥강자 NXP의 결합이었기 때문이다. IHS 등 많은 시장조사 기관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긍정적 전망을 쏟아냈다. 그러나 최근 수상한 기류가 감지됐다.

 

넘어야 할 산 1: 높아지는 인수가액, 승자의 저주가 될 수 있다

2017년 5월 엘리엇, 그들이 또 다시 나섰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반대하며 우리에게도 익숙한 바로 그 미국계 헷지펀드이다. NXP의 지분을 보유한 엘리엇은 퀄컴이 제시한 인수가액이 너무 낮다며 가격 조정을 위한 재협상을 요구했다. 최초 퀄컴이 제시한 NXP 인수가액은 1주당 110달러로 기존 주가에 약 34%의 프리미엄을 얹은 금액이었다. 최근 10년 간 미국 기업의 대형 인수 평균 프리미엄이 약 27%임을 감안하면, 이미 상당한 수준의 프리미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리엇은 여기서 더 나아가 추가 금액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재원이 무한정일 수는 없다. 높은 인수가격은 낮은 사업투자로 이어진다.

최초 퀄컴이 NXP를 인수하며 주목한 부문은 향후 연 평균 10% 이상의 시장성장률(CAGR)이 예상되는 자동차 시장이었다. 그러나 급속 팽창하는 시장에서 다수의 경쟁자를 물리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막대한 연구개발비와 시설투자비가 요구된다. 지나치게 높은 인수가액을 부담할 경우, 퀄컴은 자칫 향후 사업 확장에 필요한 실질적 투자 부족과 유동성 위기에 직면할 수 있는 부담을 안게 될 수 있다. 이른바 ‘승자의 저주’가 시작되는 것이다.

 

넘어야 할 산 2: 너무 다른 사업 영역, 시너지가 제한될 수 있다.

1994년 독일의 BMW는 영국의 로버그룹을 인수하였다.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가장 완벽한 한쌍’이라고까지 표현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후륜(뒷바퀴) 굴림 승용차의 명가 BMW와 사륜 SUV의 강자 로버의 결합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6년후 BMW 이사회는 로버그룹의 매각을 결정하였다. 매각 금액은 단돈 10파운드였다. 로버 그룹이 BMW에 입힌 피해액은 총 70억 달러였다. BMW 최대 주주인 크반트 가문은 이 사건에 대해 훗날 이렇게 말했다. “우리 최대의 실수는 로버그룹의 인수였고, 우리 최대의 성과는 로버그룹의 매각이다.”

BMW와 로버의 인수합병은 퀄컴과 NXP의 결합을 떠올리게 한다. 서로 다른 영역에서 역량을 보유한 두 기업의 결합은 표면적으로 보기에는 매우 이상적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녹록치 않다. 통신과 차량용 반도체는 사실 상 ‘반도체’라는 이름만 같을 뿐 전혀 다른 제품이다. 통신용 반도체 사업은 신속성이 중시된다. 일반적으로 2~3년의 교체 주기와 신속한 프로세싱이 중요시 되며 일정 수준의 불량률은 용인이 가능하다. 그러나 차량용 반도체 사업은 완전성이 중시된다. 제품 수명은 15년에 달하며 인명과 직결되는 제품이다 보니 단 1%의 불량률도 용납되지 않는다.

'반도체'라는 이름만 같을 뿐, 사실 상 다른 제품

이런 차이점은 기업 전략 관점의 차이를 낳을 뿐만 아니라, 합병 이후 화학적 통합을 어렵게 만든다. 예컨대, 신속한 시장 대응을 중요시 하는 퀄컴 출신의 자동차 사업부문장은 높은 내구성의 제품 개발을 위해 긴 시간을 보내는 NXP의 연구개발팀이 불편할 수 밖에 없다. 게다가 문제는 또 있다. NXP 내부도 아직 정리가 되지 않았다. 퀄컴의 인수 발표 당시 NXP는 프리스케일이라는 거인을 삼킨지 불과 1년이 지났을 뿐이었다. 통상 3년이라는 기업 간 인수 통합과정을 생각할 때, 이는 즉 NXP와 프리스케일 간 통합 작업도 아직 온전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이다.

 

넘어야 할 산 3: 불투명한 각국 승인, 인수 자체가 무산될 수 있다.

인수 합병은 두 기업 간 문제가 아니라 각국 정부 승인이 필요한 사안이다. 그런데 이 승인 여부조차 불투명해지고 있다. 퀄컴은 최근 각국 정부로부터 모뎀칩 특허 남용으로 각국 정부 사정기관의 타깃이 된 바 있다. 이런 민감한 상황에서 EU는 6월 9일 퀄컴과 NXP의 합병에 대한 심층 조사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EU는 두 기업 간의 합병으로 1) 반도체 가격의 상승, 2) 소비자의 선택 폭 제한, 3) 업계의 혁신 감소 등이 우려된다며 심층 조사 이유를 밝혔다. 이는 당초 6월 9일 인수 합병에 대한 EU의 최종 결정이 나올 것이라던 시장의 예측을 뒤집는 것이어서 큰 파장이 예상되고 있다.

중국 정부는 글로벌 반도체 공룡 탄생이 불편하다.

EU 뿐만이 아니다. 중국 정부의 승인은 더욱 블랙박스 같은 상황이다. 한창 반도체 사업을 강화/육성하고 있는 중국 입장에서 외국계 초거대 기업의 탄생은 반가운 일이 아니다. 과거에도 중국 상무부는 NXP의 프리스케일 합병 승인을 조건으로 NXP의 RF(무선주파수) 사업군에 대한 매각을 요구한 바 있다. 업계 및 시장조사업체 캐피탈 포럼에 따르면, 금번 퀄컴과 NXP의 인수 합병 대가는 더 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승인의 대가로 중국이 보안식별 기술 사업을 요구할 것이 라는 전망이다. 그러나 해당 사업은 NXP가 전통적으로 가장 강점을 보유한 분야일 뿐만 아니라 개인식별문제 등 민감한 보안 사안으로 연결될 수 있어 선뜻 응하기 어려운 ‘딜’이다. 게다가 승인을 얻기 위해 중국 정부의 무리한 요구를 받아 들인다 해도,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잔뜩 우려하고 있는 미국과 EU 측에서 다시 난색을 표할 것이 분명해 보인다. 진퇴양난이다.

일반적 M&A 성공률 50% 미만, 아직 지켜봐야 한다.

통상 분석 기관 및 방법론 등에 따라 다소 오차가 있으나, 일반적으로 경영학계에서 M&A의 성공률은 50%를 넘지 못한다. 쉽게 말해 ‘반 타작’이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흔히 기업 간 인수합병은 남녀의 결혼에 많이 비유되곤 한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만난 주체들이 하나로 합쳐진다는 본질적 측면에서 많은 유사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많은 결혼식장에서 주례 선생님들은 이런 말씀을 하신다.

“이 아름다운 결혼식 이후, 어쩌면 이 두 사람 앞에는 많은 역경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퀄컴과 NXP를 보며 우리가 되새겨야 할 말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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