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월드=정환용 기자] 가트너가 매년 10월경 발표하는 ‘주목해야 할 10대 전략 기술’은, 당장 주목을 받고 있기보다는 향후 5년여 동안 크게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 기술에 집중한다. 2017년에 발표한 10개의 전략 기술들은 크게 ‘인텔리전트’, ‘디지털’, ‘메시’ 등 3가지로 구분돼 있다.(사진 1 참조) 가트너의 데이빗 설리 부사장은 3가지 중 인텔리전트 부분에 대해 “물리적 세계와 디지털 세계는 더 밀접하게 연결되고 있다”며, 다른 7개 기술은 지능형 디지털 메시 구현에 필요한 플랫폼과 서비스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2016년에 이어 2017년에도 선정된 전략 기술은 ‘메시 앱과 서비스 아키텍처’(Mesh App and Service Architecture, MASA)다. 가트너가 2년째 강조하고 있는 것이 ‘디지털 메시’인데, 스마트폰부터 가전제품까지 수많은 기기들이 촘촘한 그물망처럼 상호 연동되는 형태를 뜻한다. 이는 단순히 사용자들이 능동적으로 제공하거나 교환하는 정보가 아니라, 기기가 스스로 수집하는 정보를 사용자가 활용할 수 있는 수준까지 발전하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기기가 상호 연결된 세계, 디지털 메시

가트너가 지난 2016년에 선정했던 10대 전략기술의 큰 궤 중 하나는 디지털 메시였다. 디지털 메시의 기본 구조는 ‘연결’이다. 현대인들이 항상 사용하는 전화기부터 집안의 보일러까지 모든 기기를 네트워크로 통합시켜 사용자 경험을 연결한다는 것이 의의이자 목적이다. 
클라우드 서비스를 기반으로 하는 기기 간 앱 정보의 연동은 이미 상당부분 실현돼 있다. 디지털 메시의 관건은 특정 운영체제 내에서의 공유가 아니라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모두 ‘애플리케이션’이란 공통분모 속에서 사용자 경험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것이다.

현재 모바일과 데스크톱 등 플랫폼을 막론하고 사용자 경험이 연결되는 것은 애플이나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이 부분적으로나마 구현하고 있다. 예를 들어 아이폰으로 사진 촬영을 하면 애플의 클라우드 서비스 아이클라우드에 자동으로 사진이 등록된다. 이 사진은 아이패드에서도 볼 수 있고, 아이맥이나 웹브라우저의 아이클라우드 사이트에서도 볼 수 있다. 아이워크(iWorks)의 경우 아이맥으로 작업하던 문서를 아이패드에서 그대로 이어서 작성할 수 있고, 아이맥의 키노트 앱으로 만든 프레젠테이션 파일의 오타를 아이패드로 수정해 재전송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지금으로선 같은 브랜드의 제품과 서비스 내에서만 가능한 사용자 경험의 연결이 통합되기 위해선 USB와 같은 통합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국제표준을 지향했던 도시바의 HD-DVD나 소니의 MD(Mini Disc)의 실패처럼 표준 규격에 대한 이슈가 시장 경쟁체제의 쟁점이 돼선 안 된다. 적어도 모든 사용자 경험의 연결을 위한다는 대전제 하에, 기업들이 공통분모를 선정하는 시도가 필요하다.

 

메시 앱이 완성된 도시에서의 삶

지금까지는 하나의 작업이 다른 환경으로 이어지려면 같은 브랜드의 제품군 사이에서만 가능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브랜드나 플랫폼에 관계없이 같은 서비스를 어디서나 이어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 가트너가 설명하는 메시 앱의 목적지 중 하나다. 바쁜 하루를 보내야 하는 A씨의 일상을 메시 앱 구조가 완성된 도시에 적용시켜 상상해 보자. 아마 2017년에 태어난 아이들이 성인이 됐을 때면, 다음과 같은 일들이 현실이 돼 있을 듯하다.

출근길에 나선 A씨가 집에서 나와 엘리베이터를 타면, 버튼을 누르지 않아도 차가 주차돼 있는 지하1층으로 연결된다. 스마트키를 가진 A씨가 자동차에 접근하니 자동으로 자동차의 잠금이 해제되고, 스마트폰으로 보던 유튜브의 영상은 자동차 대시보드의 디스플레이로 연동된다. 원래대로라면 20분 거리의 직장으로 내비게이션이 설정되지만, 자동차의 컴퓨터는 스케줄 표에 저장된 오전 미팅 장소로 목적지를 변경한다. 유튜브 화면의 아래에는 오늘 만날 업체와 담당자에 대한 간단한 정보를 나열해 준다.

집을 나서 자동차에 올라타 출발하기까지 약 10분가량의 시간 동안, A씨는 스마트폰부터 엘리베이터, 자동차까지 3개의 시스템이 연결된 것을 경험했다. 미팅 장소인 카페의 할인쿠폰을 자동 다운로드받거나 미팅 중 메모한 내용을 사무실의 PC로 확인하는 등의 경험이 더해지면, 사실상 아침에 침대를 벗어날 때부터 저녁에 침대에 돌아올 때까지의 모든 경험이 연결된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런 경험이 현실이 되기까지는 많은 기술이 선행돼야 한다. 모바일 기기에서의 작업이 PC로 연동되기 위해선 서로 다른 운영체제 간의 상호 연동이 필요하고, 평소 별 생각 없이 이용하는 엘리베이터에도 모든 사용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범용 사물인터넷이 적용돼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서비스들은 불특정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만큼 그 경험이 끊기면 안 된다. 하다못해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나 하드웨어 교체를 위한 점검 시간도 지금처럼 이용자가 가장 적은 시간대에 불과 한두 시간 정도 진행되는 것도 더욱 줄여 사용자가 서비스의 중단 사실을 인지할 수 없는 수준이 돼야 한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다음에 언급할 ‘소프트웨어 정의’(Software Defined Anything, SDx)다.

 

소프트웨어 정의 애플리케이션 서비스

가트너가 지난 2014년 전략 기술 중 하나로 선정했던 ‘소프트웨어 정의’에 대해 알아보자. 가상화(Virtualization)와 상통하기도 하는 이 용어의 대략적인 정의는, 비즈니스 환경에서 데이터와 시스템을 별개로 운영하는 형태를 뜻한다. 이것이 적용된 체제에서는 잠시 시스템의 운영이 멈추더라도 사용자가 앱을 문제없이 이용할 수 있다. 대부분의 모바일 앱들이 점검이나 업데이트 진행 중에 접속할 수 없는 것은 소프트웨어 정의가 도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 개발사가 만든 모바일 게임 앱에서 시스템 점검을 해야 하는 상황을 가정해 보자. 일반적으로 점검이나 업데이트를 하려면 모체인 서버에 그 내용을 저장·적용해야 한다. 과거에는 이 작업 중에는 사용자가 앱을 실행시킬 수 없었다. 데이터와 시스템이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운영자 측의 시스템과 사용자 측의 데이터가 분리 운영되는 형태가 나타나고 있어, 시스템 점검이나 업데이트를 하는 와중에도 게임을 즐길 수 있다. 

 

소프트웨어 정의는 ‘소프트웨어 정의 네트워킹’, ‘소프트웨어 정의 스토리지’ 등 엔터프라이즈 분야에서 자주 등장한다. 특히 클라우드 스토리지 서비스를 운영하는 입장에선 무엇보다 서비스가 멈추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사용자 데이터는 굉장한 속도로 증가하고 있는데, 점점 거대해지는 데이터에 대해 서비스 제공업체가 자체 데이터센터로 감당할 수 있는 한계점은 반드시 오게 된다. 이럴 때 서버와 스토리지, 장비들을 모두 소프트웨어 정의 기반으로 운영해 서버 인프라 내에서 구현하면 소프트웨어로 관제되는 서비스로 말미암아 기존의 정책보다 훨씬 유연하고 빠른 대처가 가능해진다.

이 부분에서 제공자와 이용자 중 어느 한 쪽의 손을 들어줄 수 없기 때문에 미묘한 갈등이 생길 수 있다. 제공자 측에서는 저마다의 기준으로 시스템을 유지·보수하는 가이드라인을 구축하고 있는데, 사용자 경험의 연결을 위해선 이 기준을 근본부터 뜯어고쳐야 한다. 이는 단지 더 나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로 교체하는 것처럼 단순하게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개발 언어를 받아들이는 것만큼이나 쉽지 않은 문제다.

사용자 입장에선 매달 두 번째 토요일 새벽 3시간여 동안 서비스가 중단되는 식으로 경험이 끊기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게다가 이 경험이 단순히 송금이 멈추는 것이 아니라 자율주행 차량과 같은 기기와 연결돼 있다면 훨씬 심각하게 인지해야 한다. 겨우 한 달에 한 번, 3시간 정도 서비스가 중지되는 것은 그리 긴 시간은 아니지만, 그 시간 안에 응급환자를 이송해야 하는 구급차가 움직일 수 없다면, 기술이 발목을 잡게 되는 심각한 문제가 된다.

결국 기술의 발전과는 별개로 소프트웨어 정의 애플리케이션은 어떻게든 실현돼야 하고, 이것이 어느 시점에 이뤄질 것인지가 관건이다. 단순하게는 iOS와 안드로이드 모두에서 사용할 수 있는 게임 앱처럼, 혹은 윈도우와 맥OS 모두에서 즐길 수 있는 게임 클라이언트처럼 소프트웨어 기반의 통합이 필요하다. 지금처럼 다른 구동 환경에서도 경험할 수 있는 정도의 개별적인 시스템이 아니라, PC에서 수행하던 게임의 퀘스트를 태블릿PC에서 완료할 수 있는 수준까지 나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경험의 지속성 유지’

데스크톱과 모바일, 웹과 IoT 등 모든 플랫폼에서 사용자 경험이 연결되는 것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질 수 있다. 하나는 새로운 기술의 발견을 위한 전제조건이고, 다른 하나는 상상이었던 기술의 현실화를 위한 교두보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인공지능, 자율주행 등 다양한 기술이 상용화되기 위해선 경험의 지속성이 반드시 필요하다. 

모든 앱이 서로 연결되는 것도 중요하고, 거대한 인프라의 구축과 유지·관리도 중요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단지 ‘연결됐다’는 정의가 아니라 ‘잘 연결됐다’는 품질이다. 과거에 불가능했던 일이 드디어 가능해졌다는 수식어는, 예전에는 받아들여졌을지 몰라도 지금은 통하지 않는다. 기술의 혜택을 받는 모든 사람들이 얼리어답터는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 AT&T, 인텔, HP, 구글, 페이스북, SK텔레콤 등 다양한 기업들이 소프트웨어 기반 인프라의 비전을 제시하고 관련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인텔의 경우 예전부터 클라우드와 비슷한 기술을 활용해 국제적인 자원을 제공해 왔고, 최근에는 더 빠르고 효율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2013년부터 소프트웨어 기반 네트워크나 서비스 관련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HP 역시 데이터센터를 소프트웨어 기반으로 구축해 데이터센터의 범위 바깥에 있는 다양한 기술도 포함시키는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이미 생활 속 깊이 자리 잡고 있는 기업들이 광범위한 앱과 서비스의 통합을 구축해낸다면, 앞서 설명했던 A씨의 일상을 우리 모두가 영위할 수 있는 똑똑한 세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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