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월드=정환용 기자] HTC ‘바이브’와 삼성 ‘기어 360’으로 가상현실(VR, Virtual Reality) 에 대해선 어느 정도 익숙해졌을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홀로렌즈’를 통해 증강현실(AR, Augmented Reality)의 개념도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아직은 두 가지 모두 진짜 현실과는 약간의 거리가 있는데, VR이나 AR의 기술이 아직은 ‘보는 행위’, 그것도 중간 정도의 어중간한 품질에 정체돼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눈이 적응하기에, 약 5~10㎝ 거리에서 봐야 하는 액정화면은 그 픽셀의 크기가 아직도 ‘크다.’

사용자의 ‘초개인화’(Hyper-personalized)는 기술의 발전 방향을 바꿀 만큼 점점 심화되고 있다. 가상의 디지털 세계를 구현하기 위한 노력 역시, 모 아동 프로그램의 제목처럼 ‘혼자서도 잘해요’의 기술적인 실천의 과정이다. 지금은 게임 등 엔터테인먼트 분야에 국한돼 있지만, 점차 VR과 AR을 적용할 수 있는 영역이 확장될 것이고, 이에 따라 사용자 개인의 경 험 역시 지금보다 훨씬 다양해질 것이다.

가트너의 데이비드 설리(David Cearley) 부사장은 가상현실과 증강현실에 대해 “개인용·기업용 콘텐츠와 애플리케이션 분야는 2021년까지 폭발적으로 성장할 전망”이라고 했다. 이는 소비자들이 경험할 수 있는 차세대 콘텐츠 시장에서, 하드웨어보다 중요한 것은 소프트웨어란 점을 강조한 것이 다. 더 뛰어난 가상의 세계를 구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를 제대로 활용하고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없다면 VR 시장 성장의 의미가 없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PC VR 기기의 2강 체제는 일찌감치 형성됐지만, 모바일이나 게임 콘솔 분야의 VR 기기는 콘텐츠의 양과 질 모두 부족하다. 아쉽게도 현재까지는 가상현실 시장의 부정적 시선으로서 콘텐츠의 절대적인 부족 현상이 시장 정체를 야기하고 있다. 지난해까지는 마치 VR 기기가 PC와 모바일 생태계를 뿌리부터 뒤흔들 것처럼 엄청난 정보들이 쏟아졌는데,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 잠잠하다. 2020년에는 300억 달러에 달할 것이라던 VR 시장의 2016년 규모는 18억 달러였다. 결코 적지 않은 규모이긴 하지만, 초기의 기대에는 미치지 못하는 성장 속도다. 현재의 정체를 해소하기 위해 VR 산업 전반에 걸쳐 동시에 해결해야 하는 과제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VR과 AR의 한계
가상현실(Virtual Reality, VR)

가상현실과 증강현실의 구조적 차이는 화면의 구현 방식이 다. VR 기기를 통해 볼 수 있는 화면이 3D 그래픽으로 구현된 가상의 공간인지, 현실의 공간에 3D 그래픽 오브젝트가 구현되는 것인지로 구분하면 간단하다. 지금까지 시장에 출시된 것은 HTC 바이브(Vive), 오큘러스 리프트(Oculus Rift) 등 PC에 연결해 사용하는 PC VR 기기, 그리고 삼성 기어 VR, 구글 카드보드·데이드림 VR 등 HMD(Head Mounted Display) 전면에 스마트폰을 장착해 사용하는 모바일 VR 기기다.

HTC 바이브 - PC VR
오큘러스 리프트 - PC VR
플레이스테이션 VR - 게임 콘솔(PS4) VR
삼성 기어 VR - 모바일
구글 데이드림 VR - 모바일

PC VR과 모바일 VR의 화면 구현 방식도 약간 다르다. HMD 기반의 디스플레이를 착용하는 형태로서의 VR은 기본적으로 좌우 180도, 상하 135도 정도인 인간의 시야각 전체에 3D 화면을 띄워야 한다. 게다가 디스플레이와 눈 사이의 거리가 5㎝ 정도로 굉장히 가까운데, 이 때문에 0.25mm 크기의 픽셀 간의 경계선이 바둑판처럼 퍼져 보이는 스크린 도어 현상이 생긴다. 이는 PC, 모바일 VR 기기 모두에 해당 하는 문제로, 더 높은 해상도의 구현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 중 하나다.

해상도를 해결하면 다음 문제가 기다린다. 사용자의 위치를 기점으로 사방의 모든 구(球) 형태의 공간을 구현해야 하고, 가상의 공간 속에서 사용자의 위치도 정확히 포착할 수 있어야 한다. 바이브나 리프트와 같은 PC VR은 별도로 HMD의 위치를 추적하는 센서를 사용할 수 있지만, 기어 VR이나 데이드림 VR 같은 모바일 VR은 아직 사용자의 위치를 파악 할 수 있는 장치가 없다. 게다가 모바일 VR은 스마트폰 자체를 HMD의 전면에 장착하고 나면 별도로 화면을 조작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화면 속의 특정 장면을 주시하는 것으로 ‘선택’ 정도의 조작은 가능하지만, 별도의 컨트롤러가 없다면 단순 감상 이상의 경험은 어렵다.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
증강현실이 실제 생활에 가장 빠르고 폭넓게 적용된 것은 지난해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됐던 나이안틱의 모바일 게임 ‘포켓몬 고’였다. 스마트폰이 보급되던 때에도 증강현실을 이 용한 앱들이 많았지만, 본격적으로 소비자들에게 AR에 대한 개념을 인식시켜 준 것은 역시 게임의 영향이 컸다. 포켓몬 고를 필두로 국내외에서 비슷한 플랫폼의 게임들을 출시해 ‘대박’을 노렸지만, 포켓몬 고의 성공의 비결은 그것이 AR이어서가 아니라 ‘포켓몬’이란 굴지의 IP였다는 점을 간과하면 안 된다.

구글이 개발하고 있는 스마트 안경 '구글 글래스'
현재 가장 기대가 큰 AR 기기인 마이크로소프트의 '홀로 렌즈'
증강현실 보급의 일등공신, 나이안틱의 '포켓몬 고'(Pokemon GO)

지난 2013년 구글이 공개한 안경 형태의 AR 기기 ‘구글 글래스’가 첫 보급형이 될 뻔했 다. 작동 영상을 본 사람들은 영화에서나 봤을법한 기술이 현실이 되는 것에 이목을 집중했다. 그러나 2012년 공개된 이후 눈에 띄는 새로운 정보는 보이지 않고 있다. 게다가 HMD 형태인 VR 기기와 달리 AR 기기는 평상시에도 착용이 가능한 형태여서, 개인 프라이버시 침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꽤 높은 편이다. 구글 글래스는 2015년 정식 사업으로 격상되기도 했지만, 아직까지 정식 출시는 요원한 상황이다.

AR 기기에 대한 충격은 구글 글래스보다 마이크로소프트 홀로렌즈의 공개에서 더 크게 다가왔다. 현실의 화면 속에 가상의 콘텐츠를 구현할 수 있다는 사실과 함께, 그 정확도는 놀라운 수준이었다. MS가 인수한 모장의 ‘마인크래프트’ 시연 영상도 많은 호응을 얻었고, 대부분의 명령을 음성으로 처리할 수 있다는 부분도 신선했다. 아직은 미국과 캐나다 지역에서 3000달러를 지불해야 구입할 수 있고, 이를 활용할 수 있는 콘텐츠도 제한적이다.

 

이른 시장 정체, 원인은?
엄청난 성장으로 PC와 모바일 시장의 판도가 바뀔 것처럼 요란했던 작년과 달리, 지금의 VR 시장은 조용하다. 유니티에서 발표한 보고서에서 2016년 모바일·VR 시장 규모는 18억 달러, 총 판매 대수는 630만 대였다. 하지만 판매량의 2/3 정도는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신제품의 사은품으로 지급된 삼성 기어 VR로, 엄연히 따지면 판매라기보다 제공이라고 봐야 한다. 이를 제외하고 차트에 포함된 바이브와 리프트, PS VR 등 고성능 VR 기기 3종과 구글 데이드림 VR의 2016년 판매량은 약 167만 대, 약 7억8000만 달러 정도다. 아직 관련 산업이 궤도에 오르기도 전에, 더 성장해야 하는 시점에서 정체가 시작된 것이다.

VR 기기가 개인 컴퓨팅 환경의 판도를 바꿀 것처럼 보였던 초기와 지금의 분위기에 온도 차이가 큰 것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그중 시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2가지 이유는 VR 하드웨어의 성능이 소비자들의 기대치보다 낮은 점, 그리고 콘텐츠의 부재다. PC VR의 경우 요구되는 PC의 사양도 상당히 높다. 게임을 예로 들면, PC의 성능을 활용하는 PC VR은 FHD 이상의 해상도에서 90FPS의 주사율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요구 성능이 상당히 높은 편이다.
모바일 VR 역시 스마트폰으로 구현할 수 있는 그래픽에는 한계가 명확하다. 모바일 기기 자체로 낼 수 있는 성능은 그 상한선이 상당히 낮은데, 이를 VR로 구현하는 것은 아직까지는 무리다. 때문에 지금까지의 모바일 VR 콘텐츠는 대부분 360도 촬영 영상을 고정된 위치에서 감상하는 것이 대부분이고, 3D 그래픽 게임은 거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다행인 것은 증강현실의 기술적 특성상 HMD 형태가 아니더라도 휴대형 디스플레이를 사용하는 모든 기기에 적용할 수 있어 확장성이 PC VR보다 넓다는 정도다.

오히려 AR 시장이 VR보다 전망이 좋은 편이다. 실물로 구현된 홀로렌즈를 비롯해 인텔도 자사의 리얼센스 3D 카메라 기술을 활용한 AR 기기를 내놓겠다고 했고, 애플도 증강현실 시스템을 적용한 스마트 안경을 연구하는 정황이 포착되고 있다. IDC는 지금의 VR·AR 기기 시장은 1000만 대 규모지만, 2020년에는 1억 대가 넘을 것으로 예측했다. 현재의 시장 상황을 보면 이 수치는 곧 하향 조정될 가능성이 크지만, 한 리서치 회사는 2019년에 AR 기기의 매출이 VR 매출을 넘어설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현실의 가상화, ‘융합현실’(Mixed Reality)
시장 정체의 두 번째 원인인 콘텐츠의 부족은,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다. 어떤 기술이 이제 막 상업화의 가시권에 들어온 시점에서, 그 시장의 앞날을 내다보고 상황을 전망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스마트폰의 개념이 도입된 휴대폰은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스마트폰이 휴대폰 시장을 지배하도록 만든 기폭제는 2007년 출시된 애플의 아이폰이었다. 그 기저 에는 해당 기기에서 사용할 수 있는 다양한 애플리케이션들이 있었다.

과거와 달리 컴퓨팅 기술의 발전 양상은 하드웨어가 소프트웨어를 따라오는 형국으로 바뀌었고, 이는 콘텐츠를 VR·AR 기기가 따라오게 만들어야 한다는 기조와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VR이나 AR 기기 고유의 콘텐츠가 아니라 그 플랫폼을 활용하는 애플리케이션은 이미 다양한 업계에서 마케팅과 접목하고 있는데, 대표적으로 가구 브랜드 ‘이케아’의 사례가 있다.

가구 브랜드 이케아의 증강현실 카탈로그. 스마트폰 앱으로 카탈로그 책자의 코드를 검색하면, 해당 제품을 화면 속에서 집안 어딘가에 배치할지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가장 빠르게 VR, AR 기기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콘텐츠는 무엇일까? 현재 PC VR은 게임, 모바일 VR은 360도 영상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모두 컴퓨터나 스마트폰 등의 기기에 국한된 콘텐츠들이다. 이케아는 자사의 카탈로그를 앱으로 스캔해 집안 어디에 배치할지를 증강현실로 볼 수 있다. 이케아 매장에 직접 가지 않고도 가구의 크기, 디자인, 색감 등을 고려해 원하는 제품을 선택해 주문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증강현실과 융합현실의 개념이 구분된다. 명확한 경계선이 있진 않지만, 위 사진처럼 화면 속의 현실에 가상의 세계를 얹은 것이 증강현실, 그리고 이런 환경을 HMD 등의 전방위 디스플레이 기기를 사용해 사용자가 그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을 융합현실로 보면 적절하다. 이는 PC VR처럼 고성능의 하드웨어 사양이 요구되는 것이 아니어서 범용성 면에서 PC VR보다 훨씬 빠르고 폭넓게 생활에 적용 될 잠재력이 있다.

최근 TV 예능 프로그램 ‘어쩌다 어른’에서 오마이스쿨 최진기 대표가 이와 관련한 내용을 언급한 바 있다. 최 대표는 “가상현실이 생활에 접목되면, 지금까지 당연하게 여겨졌던 도시의 개념과 형태 자체가 바뀔 수 있다”고 언급했다. 앞서 언급한 이케아의 사례가 보편화가 되면, 학생은 굳이 배움을 위해 학원에 가지 않아도 되고, 주부들은 장바구니와 자동차 키 대신 스마트 안경을 집어들게 된다. 현실 속 가상의 공간에서 인간과 기계의 상호 작용이 가능하게 되고, 이런 환경을 누구나 손쉽게 이용할 수 있게 되는 때가 오면, 비로소 가상과 현실이 하나가 되는 융합현실의 시대가 본격화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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