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트너 하이프 사이클(Hype Cycle)을 통해 본 유망 기술의 흥망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첫 인상 참 좋다” 라는 말보다 “알면 알수록 진국이다”라는 말이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올 때가 있다. 첫 인상은 좋았지만, 알고 지낼수록 단점이 보이고 마침내 실망하기가 쉬운데,  지켜볼수록 그 사람의 매력에 빠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비단, 사람에게뿐 만이 아니 기술에게도 이런 평가는 유효하다. 특히나 세상을 뜨겁게 달구는 유망 신기술은 특히나 그렇다.

<가트너 하이프 사이클의 주기별 단계>


유망 기술의 단계와 기대감을 제시하는 하이프 사이클

글로벌 IT 컨설팅/조사 기업인 가트너(Gartner)는 매년 전 세계의 이목을 끄는 약 2,000여 개의 기술을 평가하여 가트너 하이프-사이클 (Garterner Hype-Cycle)을 발표한다. 하이프-사이클은 마치 한 사람의 일생과 같이 기술의 진화 단계를 크게 다섯 가지의 주기로 분류하고 각각의 기술이 어떤 단계에 위치하며 이 때에 시장 기대감 수준은 어떠한지를 평가한다. 5단계를 간략히 요약하자면 혁신 기술로 서서히 시장의 주목을 받고,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차세대 먹거리로 정점을 찍은 뒤 성숙 단계를 거쳐 서서히 안정적인 시장 진입 단계로 접어드는 일련의 과정을 제시하는 것이다. 각 단계별 기술의 진화 과정은 다음과 같다.
 

1. 기술 촉발 (Technology Trigger) : 잠재적 기술이 관심을 받기 시작하는 시기. 초기 단계의 개념적 모델과 미디어의 관심이 대중의 관심을 불러 일으킨다. 상용화된 제품은 없고 상업적 가치도 아직 증명되지 않은 상태이다.

2. 부풀려진 기대의 정점 (Peak of Inflated Expectations) : 초기의 대중성이 일부의 성공적 사례와 다수의 실패 사례를 양산해 낸다. 일부 기업이 실제 사업에 착수하지만, 대부분의 기업들은 관망한다.

3. 환멸 단계 (Trough of Disillusionment) : 실험 및 구현이 결과물을 내놓는 데 실패함에 따라 관심이 시들해진다. 제품화를 시도한 주체들은 포기하거나 실패한다. 살아 남은 사업 주체들이 소비자들을 만족시킬만한 제품의 향상에 성공한 경우에만 투자가 지속된다.

4. 계몽 단계 (Slope of Enlightenment) : 기술의 수익 모델을 보여 주는 좋은 사례들이 늘어나고 더 잘 이해되기 시작한다. 2-3세대 제품들이 출시된다. 더 많은 기업들이 사업에 투자하기 시작한다. 보수적인 기업들은 여전히 유보적인 입장을 취한다.

5. 생산성 안정 단계 (Plateau of Productivity) : 기술이 시장의 주류로 자리잡기 시작한다. 사업자의 생존 가능성을 평가하기 위한 기준이 명확해진다. 시장에서 성과를 거두기 시작한다.

 하이프 사이클은 해당 기술의 진화 단계를 과학적으로 평가하고 제시하기에는 충분히 과학적이지 못하다는 한계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기술들이 시장의 기대감을 한 몸에 받고 있고, 유망한지를 제시하는 가장 대중적인 지표의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그래서 매년 다수의 언론은 이를 인용하고 다수의 기업들은 그 결과를 토대로 새로운 먹거리 사업 탐색의 근거로 활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과연 그것으로 충분할까? 매 년의 단편적 결과 분석이 아닌 2014~2016의 3개년 하이프 사이클에 대한 종단면적 분석을 통해 하이프-사이클이 가지는 함의를 파악해 보자.

시장의 관심을 받는 유망 신기술은 지속 감소 추세

최근 3년 동안, 하이프 사이클에 자신의 족적을 남긴 기술들은 커넥티드 홈(Connected Home)과 같이 일반인들에게도 익숙한 기술에서부터, 801.11ax 차세대 와이파이 프로세스와 같이 다소 생경한 기술들을 망라하여 총 70개였다. 그러나 해를 거듭할수록 하이프 사이클에 기록되는 기술의 수가 감소하고 있다. 실제로 본보의 분석에 따르면 2014년에는 총 44개의 기술이 조망되었지만, 2015년 37개, 2016년 34개로 그 수가 지속적으로 줄고 있다. 하루가 멀다하고 신기술들이 지속적으로 소개/출시되는 최근의 상황을 고려했을 때, 쉽사리 이해 되지 않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한 글로벌 IT 스타트업 투자 전문 심사역은 다음과 같은 해석을 내 놓았다.

“학습효과다. 다수의 유망 기술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실제로 상업화 단계에 성공적으로 도달한 기술들은 지극히 적었다. 이러한 과정을 지켜보며 시장은 유망기술에 대한 정의의 기준을 높여가고 있다. 실망은 누구에게나 그리 유쾌한 과정은 아니기 때문이다.”

유망 기술이 실제적 진화를 성취할 확률은 약 5%에 불과

실제로 최근 3개년 동안 하이프-사이클 상 소위, 현실화 단계를 목전에 두고 있는 4,5단계 계몽 혹은 생산성 안정 레벨에 위치한 기술들은 눈에 띄게 감소했다. 2014년에는 ‘음성인식’ 기술 1개가 생산성 안정 단계에 위치한 것으로 평가되었지만, 2015년과 2016년에는 생산성 안정 단계에 진입한 기술은 단 한 개도 없었다. 

이에 반해 촉발/절정 단계의 기술이 차지하는 비중은 ‘14년 59%에서 ‘16년 88%로 증대 되었다. 더불어 3개년 동안 등재된 총 70개의 기술 중 약 53%는 한 해만 이목을 끌고 이내 대중들의 관심 속에서 멀어져 간 것으로 파악되었다. 실제로 추적기간 3개년 동안 지속적으로 하이프 사이클에 잔존한 기술은 단 12개에 불과하였고 이 중에서도 다음 단계로의 진화를 성취한 기술은 컨넥티드 홈, 자연어 질문 인식, 스마트 로봇, 가상 현실 4개에 그쳤다. 유망하다는 다수의 기술들이 대중에게 공개되었고 많은 주목을 받았지만, 이러한 관심을 유지시키며 실질적 진화를 달성할 기술들은 5%에 불과했다.

물론 하이프-사이클은 유망 기술들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분석 도구이자 Tool이고, 상업화에 성공한 기술들은 상대적으로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기 쉽다는 부분은 명확히 인지해야 하다. 그러나 개념 단계에서는 많은 관심을 받지만, 실질적 성과를 내지 못하는 기술들에 대해 대중과 미디어가 무비판적 수용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짚어 볼 만한 부분이다. 


 ‘첫 인상만 좋은’ 기술이 아닌 ‘진국’ 기술 되기

 “클라우드가 뜬다는 말에 조금이라도  연관이 있는 기업들은 모두 시장에 앞 다퉈 진입했다. 그 때가 우리가 그리던 클라우드는 근본적 사회 변화의 동인이었다. 그러나 현실을 보면 대다수 기업들이 대동소이한 제품과 서비스를 가지고 가격 경쟁으로 치닫고 있다. 우리가 그렸던 유망기술의 경쟁은 이런 식상한 그림은 아니었다. 최초의 그 멋진 클라우드를 생각한다면, 사실은 좀 더 인내를 갖고 장기적 기술 투자가 필요한데, 현실은 매일의 성과에 치이고 있다.”

 국내 모 대기업의 클라우드 사업부 담당자의 이야기이다. 

주식시장에는 시쳇말로 “상투를 잡았다”라는 표현이 있다. 특정 종목의 상승 최고 시점에 투자를 하여 손실을 입는 투자 행태를 빗대는 말이다. 하이프 사이클은 우리에게 유망 기술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보여준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기술의 ‘상투’를 보여주기도 한다. 아니 오히려 그 ‘상투’를 보여주는 것이 하이프 사이클이 가지는 더 큰 함의일지도 모른다.

하이프 사이클 상 어떤 기술들이 ‘절정’의 단계에 있는가에 주목하고 그 기술에 투자를 하는 것도 중요하겠으나, 정작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유망기술들이 마주해야 하는 절정 이후에 찾아오는 깊은 골짜기로의 여정이다. 하이프 사이클은 “첫인상 좋은 유망기술”을 우리에게 이야기 해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에게 “이 유망 기술이 진정 가치 있는 기술이 될 때까지, 연구와 투자를 인내할 수 있겠는가?”를 단호한 의지 혹은 믿음을 묻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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