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 반도체 시장 동향과 전망

[테크월드뉴스=서유덕 기자] 컴퓨터의 중앙처리장치(CPU)나 스마트폰의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같이 데이터 연산과 처리를 수행하는 시스템 반도체는 응용처의 역할과 기능에 맞춰 설계된다.

D램, 낸드플래시 같은 메모리 반도체가 기억과 저장이라는 목적에 한정적으로 사용되는 것과 달리 시스템 반도체는 응용처가 다양하다. 명령을 연산 처리하는 CPU·AP 외에도 TCP/IP 프로토콜 칩처럼 통신 신호를 처리하거나, 이미지 센서 같이 주변 데이터를 수집·측정하는 데도 두루 쓰인다.

이렇듯 다양한 목적으로 사용되는 시스템 반도체는 수요자의 요구사항에 따라 기획·설계된다. 따라서 ‘주문 후 생산’ 방식을 따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로 인해 시스템 반도체 산업은 설계(팹리스, Fabless)와 제조(파운드리, Foundry)가 분리돼 있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팹리스는 미국, 파운드리는 대만

세계반도체무역통계기구(WSTS)가 8월 16일 발표한 반도체 시장 동향 자료에 따르면, 2021년 글로벌 시스템 반도체 시장 규모는 약 2986억 달러(약 352.4조 원)로 추산된다. 전체 반도체 시장에서 시스템 반도체의 점유율은 약 54%로 예상되며, 로직IC(16.2%) 마이크로컴포넌트(10.9%) 아날로그IC(29.1%) 모두 전년 대비 두 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로직IC에는 스마트폰용 AP나 디스플레이구동칩(DDI) 등이, 아날로그IC에는 디지털-아날로그 신호 컨버터(DAC/ADC)나 전력관리반도체(PMIC) 등이 있다. 마이크로컴포넌트는 PC·서버용 CPU, 차량·가전·산업용 마이크로컨트롤러(MCU)를 포함한다.

2020년 기준 글로벌 시스템 반도체 시장의 대부분(70%)을 미국 기업이 점유하고 있으며, 유럽과 대만 기업이 뒤를 잇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OMDIA)에 따르면 글로벌 상위 10개 시스템 반도체 기업 중 7개가 미국 회사다.

전체 팹리스 시장 매출에서 60% 정도를 미국 기업이 차지한다. 미국은 1980년대 후반부터 반도체 제조기술 연구 조합을 설립해 인프라 조성, 인력 양성, 투자 등 반도체 설계 산업 생태계 조성에 나섰다. 퀄컴은 창업 초기 미국 정부의 지원을 받아 성장한 대표적인 기업 중 하나다. 시장조사업체 스트레티지애널리틱스(SA)에 따르면 퀄컴은 2021년 2분기 전체 AP시장의 36%를 차지해 점유율 1위를 기록했다.

유럽에는 차량용 반도체와 전력반도체에서 강세를 보이는 NXP반도체(네덜란드), 인피니언(독일), ST마이크로(스위스) 등이 있다. 그리고 전체 시스템 반도체 시장의 10% 내외를 점유하고 있다. 대만에는 2분기 AP시장 점유율 29%를 기록한 미디어텍이 있다.

파운드리는 TSMC를 중심으로 대만이 글로벌 시장 대부분을 점유하고 있다. 상위 10개 파운드리 기업 중 4개 업체가 대만 국적으로, 2021년 2분기 기준 시장 점유율은 총 63.3%에 달한다[표 1].

[표 1] 2021년 2분기 팹리스·파운드리 매출액 상위 10개 기업(단위: 백만 달러 / 출처: 트렌드포스)

 

IT 기업, 반도체 자립 나서

IT 기술이 발달하면서 소비자용 제품은 물론 산업용 장비까지 거의 모든 기계 장치에 반도체가 쓰인다. 반도체 칩은 전자화된 기계 장치에서 성능을 결정짓는 핵심 부품으로 작용하는데, 기업들은 자신들의 제품과 서비스의 성능을 결정하는 반도체 부품을 팹리스에 의존하지 않고 직접 설계까지 나서고 있다. 직접 맞춤 제작하면 자신들의 제품에 알맞은 성능을 확보하고 외부 의존도를 낮춰 확실하게 수급을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명현 세미파이브 대표는 지난 5월 테크월드가 주최한 ‘시스템 반도체 좌담회’에서 “무어의 법칙이 종말을 맞고 있는 상황임에도 더 높은 성능에 대한 수요는 계속 증가하고, 수요처는 다변화되고 있다”면서 “더 높은 공정기술을 적용함에도 그에 따른 성능을 구현하지 못한다면, 각각의 응용처에 최적화된 반도체를 설계할 수밖에 없다”고 기업들이 반도체 자립에 나선 이유를 설명한 바 있다.

특히 미래차 전환이 가속화되는 자동차 산업은 반도체가 빠르게 확산되는 분야 중 하나다. 내연기관차 1대에만 200여 개의 반도체가 필요하고, 자율주행 기능을 가진 전기차에는 2000개 이상의 반도체가 필요하다. 이에 자동차 OEM과 티어1 부품 업체들 다수가 반도체 자체 개발에 나섰다.

테슬라는 2019년부터 독자 개발한 자율주행용 반도체 ‘FSD’를 자사 차량에 탑재하고 있으며, 올해 8월에는 자율주행 슈퍼컴퓨터 ‘도조(Dojo)’와 이에 탑재된 자체 개발 반도체 ‘D1’을 공개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1월 부품 계열사인 현대모비스의 현대오트론 반도체 부문 인수를 시작으로 차량용 반도체 개발에 뛰어들었다. 호세 무뇨스(Jose Munoz) 현대차 글로벌 COO 겸 북미권역본부장은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자동차 부품의) 외부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며 “차량용 반도체를 자체 개발할 것”이라고 언급해 현대차의 반도체 자체 개발을 공식화했다.

빅테크 기업에서도 반도체 자체 개발 바람이 불고 있다. 애플은 ARM 아키텍처 기반으로 자체 개발한 프로세서 ‘M1’을 2020년 11월 공개했다. 그리고 2019년까지 인텔 CPU를 탑재했던 맥북 프로와 맥북 에어의 2020년형 모델에 M1 칩셋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이로써 애플은 인텔 X86 아키텍처로부터 완전히 독립했다. 구글도 올해 10월 발표한 안드로이드 레퍼런스 스마트폰 픽셀 6에 자체 개발 AP인 텐서를 탑재해 퀄컴 칩으로부터 독립했다.

빅데이터 처리를 위한 데이터센터용 인공지능(AI) 반도체 칩 또한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IBM, 화웨이 등 다수의 빅테크 기업들이 자체 개발 중이다. 지금까지 다수의 클라우드, 디바이스 기업이 AI 반도체를 시장에 선보였다[표 2].

[표 2] 주요 IT 기업의 AI 반도체 출시 현황 (출처: ‘AI 반도체 시장 동향 및 경쟁력 분석(ETRI, 2020)’)

이 같은 반도체 자체 개발 붐에 응용처 수요가 급증하면서 파운드리 기업은 호황을 맞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TrendForce)는 올해 글로벌 상위 10개 파운드리 업체의 총 매출이 1000억 달러(약 117.9조 원)를 넘어서고, 2022년에는 13% 더 높은 1176억 9000만 달러(약 138.7조 원)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수요가 급증하자 파운드리 업체들은 생산 단가를 인상하기 시작했다. TSMC는 8월부터 웨이퍼 가격을 품목에 따라 최대 20%까지 인상하겠다고 밝혔으며, UMC는 하반기부터 28나노미터(㎚) 공정 가격을 13% 인상했다. 삼성 파운드리도 하반기 내 15~20% 가격 인상을 단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김동원 KB증권 연구원은 “현재 파운드리 수요가 공급을 30% 초과하면서 파운드리 가격 현실화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업계의 가격 인상 이유를 분석했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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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에서 안보로, 기업에서 정부로

반도체가 생활 필수 전자기기는 물론 산업 필수 생산 설비에 중요 부품으로 쓰이면서 반도체 수급 문제가 한 나라의 경제는 물론 안보에도 위협 요인으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이에 각국은 ‘산업의 쌀’이라고 비유되는 반도체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이제 반도체 시장은 기업 간 경쟁의 장에서 국가 간 외교의 장으로 확대됐다.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반도체 부품 수요가 급증하자 이 현상이 더 심화됐다. 팹리스를 포함한 IT 기업들이 반도체 제조·공급처인 파운드리 라인 확보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각국은 정부 주도로 반도체 공급망 안정화 대책을 강구했다. 일찌감치 반도체를 전략물자로 규정한 미국은 4월과 5월 반도체 대기업을 대상으로 미국 내 생산시설 투자를 요구한 데 이어, 9월에는 글로벌 공급망 안정화를 이유로 영업 정보 제출을 요구했다. 이에 미국 기업인 인텔은 물론 TSMC와 삼성전자도 미국에 신규 파운드리 투자를 결정했고, 약 216개 기업과 협단체, 학연기관, 개인이 반도체 정보를 제출했다.

각국은 안보 관점에서 자국 반도체 기업과 기술이 외국으로 유출되는 것을 경계하기도 한다. 영국은 미국 기업인 엔비디아가 자국의 반도체 설계자산(IP) 기업인 Arm 인수에 나서자 “경쟁 측면에서 심각한 우려가 있다”는 견해를 내고, 2단계 심층 조사를 수행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은 잠재적인 보안 위협을 이유로 인텔의 중국 청두 소재 반도체 공장 내 실리콘 웨이퍼 증산 계획을 무산시켰다. 일본은 공급망 강화와 특허 비공개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경제안전보장추진법안을 준비 중이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공급난 장기화, 패권 경쟁 격화될 것

한국수출입은행은 2020년 12월 발표한 뉴딜산업 분석보고서를 통해 글로벌 시스템 반도체 시장 규모가 2019년 2269억 달러(약 267.9조 원)에서 2025년 3389억 달러(약 400.1조 원)로 6년간 매년 평균 7.6%씩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같은 기간 동안 로직IC는 9.1%, 마이크로컴포넌트는 4.4%, 아날로그IC는 8.2%의 연평균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그림 1].

[그림 1] 2020~2022F 유형별 시스템 반도체 시장 규모(F: 전망 / 단위: 백만 달러 / 출처: WSTS)
[그림 1] 2020~2022F 유형별 시스템 반도체 시장 규모(F: 전망 / 단위: 백만 달러 / 출처: WSTS)

2022년 이후에도 공급은 여전히 부족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KSIA)는 월례 보고서를 통해 “시스템 반도체 생산에 주로 사용되는 EPI웨이퍼(Epitaxial 웨이퍼, 폴리 웨이퍼에 실리콘 단결정층을 증착한 것)는 물론 메모리 반도체용 폴리시드 웨이퍼(다결정 실리콘 웨이퍼)도 2022년 하반기부터 수급이 부족해질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웨이퍼 생산업체들의 증설 속도가 파운드리 업체들의 증설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12인치 웨이퍼 부족 현상은 2023년 상반기까지 지속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차량용 반도체 공급난은 “2~3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는 IHS마킷 등 시장조사기관의 올해 초 전망치보다 더 장기간 이어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미래차 도입이 가속화되면서 차량용 반도체 수요는 늘고 있지만 제조시설은 여전히 부족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안기현 KISA 상근상무는 10월 27일 반도체 시장 전망 세미나에서 “올해 차량용 반도체 공장을 지어도 3년 뒤에나 생산 가능하다”면서 “현재는 차량용 반도체 생산 때문에 다른 반도체 생산을 줄여야 하는 상황이고, 이 때문에 PC나 스마트폰으로 문제가 확산됐다”고 언급했다.

반도체 공급망 문제가 오래 이어지면 반도체 패권 경쟁이 지금보다 더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각국은 앞다퉈 반도체 산업 지원 정책을 추진하거나 준비 중이다. 미국은 2024년까지 세제 혜택을 포함해 반도체 업계에 총 220억 달러(약 26조 원) 상당을 지원하는 ‘칩스 포 아메리카(CHIPS for America)’ 법안을 제정했고, 추가 지원 법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중국은 ‘반도체 산업 발전 추진 요강’에 이어 ‘중국제조 2025’를 통해 2025년까지 반도체 자급률을 70% 수준으로 높이겠다고 공언했다. 유럽과 대만, 일본도 자국 공급망 확충을 위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 정부도 5월 K-반도체 전략을 발표하며 2030년까지 약 510조 원 이상 규모의 반도체 투자를 단행, 국내 시스템 반도체 산업 생태계를 육성하겠다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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