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성도 높아졌으나 수익성 ‘갈 길 멀어’

[테크월드뉴스=이혜진 기자] 코로나로 바깥 활동이 제한되면서 증강·가상현실(AR·VR) 시장의 성장세가 가팔라지고 있지만 미디어 산업 내에선 되레 적용 사례가 줄어들고 있다. 들어가는 비용에 비해 효과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AR·VR이 요즘 뜨는 메타버스(3차원 가상 세계)의 근간인 만큼 이를 떼어놓고선 미디어의 미래를 논하기 어려워질 전망이다.

외면받던 AR·VR, 비대면 문화 확산에 급부상

AR·VR은 코로나 전까진 ‘저주받은 기술’로 불릴 만큼 시장에선 철저히 실패했다. 기술 혁신이 더뎌 상업적으로 성공한 모델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분위기가 달라졌다. 실제로 지난 7월 시장조사 업체 마켓워치는 2025년 AR·VR 시장 규모가 7660억 달러(약 894조 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2018~2025년 73.7%의 연평균성장률(CAGR)을 보일 것이라는 전망이다. 

성장 동인으로는 비대면 문화 확산으로 인한 ▲HMDS(Head mounted displays∙머리에 착용하는 VR 기기)의 수요 증가 ▲기업의 마케팅 전략에 VR 채택 ▲소매∙전자상거래 산업에서 AR·VR에 대한 수요 증가 ▲AR 관련 기업에 의한 투자·자금 조달을 꼽았다.

구글 뉴스랩이 VR에 주목한 이유

미디어 업계에서도 이 같은 AR·VR 시장의 가능성을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니다. 구글 뉴스랩이 발표한 관련 보고서에 따르면,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단순한 내용 전달에 그치는 것이 아닌 이야기를 직접 체험하고 공유하는 ‘스토리두잉(Storydoing)’ 더 나아가 이야기가 일상이 되는 ‘스토리리빙(Storyliving)’을 지향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미디어에 AR·VR을 적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내용을 실감나게 전할수록, 콘텐츠와 수용자 사이의 경계를 넘어 몰입할 기회를 주는 만큼 미디어를 더 신뢰하고 가깝게 느낀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기술적으로 필요한 조건들이 티핑 포인트(작은 변화가 쌓여 큰 변화를 초래하는 전환점)에 이르며 완성도가 높아졌단 점도 AR·VR의 도입을 부추기고 있다. 

BBC도 타임지도 AR·VR 속으로

그동안 업계에선 해외 주요 미디어를 중심으로 관련 콘텐츠가 시도돼 왔다. 대표적인 예로는 영국 BBC의 ‘BBC 커넥티드 스튜디오’에서 2017년에 만든 ‘Home - A VR Spacewalk’가 있다. 우주에서 직접 유영하는 듯한 콘텐츠로 평가받으며 실감미디어의 지평을 열었다. 

BBC는 이처럼 우수한 VR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다른 언론사보다 앞서 관련 조직을 구성했다. 21일 현재 BBC 공식 홈페이지에 따르면 지난 2012년 설립된 BBC 뉴스랩은 다양한 데이터와 첨단 기술을 활용해 VR 콘텐츠 제작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은 AR·VR 콘텐츠를 제공하는 앱인 ‘타임 이머시브(Time Immersive)’를 2019년 출시했다. 기존의 영상이나 사진으로 구성된 콘텐츠를 AR이나 VR로 재구성한 콘텐츠다.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을 담은 ‘Landing on the moon(2019년 7월 제작)’이 대표적이다. 

같은 해 9월 제작된 환경 다큐멘터리인 ‘Inside the Amazone: The Dying Forest’라는 콘텐츠에선 세계적인 동물학자이자 환경학자인 제인 구달 박사가 아마존의 부락을 찾아 자연이 파괴되는 실상을 고발했다. 단순히 영상미가 뛰어난 콘텐츠를 넘어 AR·VR 기술을 기반으로 깊이 있는 내용을 다뤘다는 점에서 호평 받았다. 

특집 취재 기사를 AR·VR 기술이 적용된 콘텐츠로 만든 사례도 있다. 영국 가디언의 ‘6X9: explore solitary confinement in 360(2016년 4월)’이 대표적이다. 좁은 독방에 갇힌 죄수가 느낄 수 있는 두려움과 심리적인 변화를 체험할 수 있다. 홈페이지에 따르면 해당 영상은 구글 뉴스랩을 포함한 6개 기업∙협회로부터 후원 받아 제작됐다.

미디어의 AR·VR 도전, 실패하거나 일회성에 그치거나

다만 현재까지 AR·VR 콘텐츠를 계속 서비스하고 있는 미디어 회사는 거의 없다. 수익화에 실패해 사업을 접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는 디스커버리 채널이다. 오큘러스 공식 홈페이지에 따르면, 디스커버리 채널은 지난 2016년 6월 ‘디스커버리 VR’이라는 채널을 만들어 자연에서 실감형 미디어를 제작해 방송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하지만 낮은 품질과 잦은 오류로 시청자들이 이탈, 결국 채널의 문을 닫았다. 

CNN도 2016년 야심차게 시작했던 관련 사업을 접었다. 전년에 제작한 ‘Go running with the bulls in Pamplona’라는 제목의 360도 VR 영상은 스페인 소몰이 축제의 숨겨진 이야기까지 서사적으로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콘텐츠로부터 발생한 수익이 저조해 2019년을 마지막으로 관련 콘텐츠를 올리지 않고 있다. 비슷한 이유로 가디언은 앞서 언급한 영상 이후 AR·VR 콘텐츠를 추가로 제작하지 않았다. 

뉴욕타임스도 매일 1개씩 올리던 ‘데일리360’이라는 VR 콘텐츠를 2018년부터 올리지 않고 있다. AR·VR 시장이 급성장하기 시작한 지난해엔 ‘이머시브(Immersive)’라는 섹션에 관련 콘텐츠를 올렸지만, 올해 1월부턴 게시를 중단했다. 2015년 11월 VR 저널리즘의 효시로 알려진 아프리카·중동 내전 참사 관련 콘텐츠를 올린 후 5년 만에 사업을 중단한 것이다. 국내 주요 언론에서도 2016년 리우 올림픽, 노량진 수산시장 등을 주제로 다양한 VR 콘텐츠가 제작됐지만 사업은 오래 가지 못했다.

학력별 뉴스 형태 선호도. 사진=영국 옥스퍼드대 로이터 저널리즘 연구소 보고서 캡처.
학력별 뉴스 형태 선호도. 사진=영국 옥스퍼드대 로이터 저널리즘 연구소 보고서 캡처.

AR·VR 콘텐츠, 고학력∙선진국 수용자일수록 효용↓

시장의 개화와 높아진 기술력에도 언론사들이 AR·VR 콘텐츠 제작을 중단하거나 시도하지 않는 이유는 특정 수용자로부터 수익이 발생할 가능성이 낮아서다. 

이와 관련해 영국 옥스퍼드대 로이터 저널리즘 연구소가 지난해 40개국에 거주하는 4만3251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고학력자(3만258명)의 56%는 뉴스를 소비하는 방식 중 읽기를 가장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기와 듣기는 각각 32%, 7%에 그쳤다. 저학력자(1만2993명)의 경우 읽기와 보기를 선호하는 비율이 41%로 같았다. 

각국의 7만9027명을 대상으로 ‘매주 온라인으로 영상 뉴스를 보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 비율은 ▲터키(95%) ▲케냐(93%) ▲필리핀(89%) 순으로 높았다. 50% 미만인 나라는 ▲영국(39%) ▲덴마크(41%) ▲독일(43%) ▲스웨덴(48%) ▲프랑스(48%) ▲네덜란드(49%)로 조사됐다. 고비용의 AR·VR 콘텐츠에 투자할 수 있는 언론사가 소재한 국가들에서 관련 비율이 낮게 나타난 것이다. 

지난 1주일 간 온라인에서 영상 뉴스를 본 비율.  사진=옥스퍼드대 로이터 저널리즘 연구소 보고서 캡처.
지난 1주일 간 온라인에서 영상 뉴스를 본 비율.  사진=옥스퍼드대 로이터 저널리즘 연구소 보고서 캡처.

한국은 대만∙말레이시아∙칠레(79%)에 이어 77%를 기록하며 12위를 차지했다. 전년(78%)보다 1%포인트 낮아진 수치다. 영국∙호주∙프랑스와 더불어 35세 미만의 수용자들이 뉴스 소비 방식 중 읽기를 가장 선호하는 현상이 영향을 미쳤다. 해당 연령층의 수용자가 유튜브 등 온라인 영상 플랫폼에 상대적으로 많이 노출되는 것을 감안하면 의외의 결과다.  

이에 대해 연구소 측은 “콘텐츠의 내용을 빨리 파악하길 원하는 수용자들의 선호가 반영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영상 콘텐츠의 경우 보통 문자 기반의 뉴스보다 내용을 파악하는데 더 오랜 시간이 걸린다.

미디어로서는 촬영 후 가공에 드는 시간이 길다는 점도 AR·VR 콘텐츠의 제작을 망설이게 한다. 사생활침해와 가짜뉴스 문제가 심해질 수 있어 AR·VR이 저널리즘의 영역에 속할 수 있는지에 관해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그럼에도 언론의 미래 전략을 수립할 때 텍스트에 너무 많은 무게를 둬선 안 된다고 제언했다. 연구소 측은 “젊은 층에서 인스타그램, 틱톡과 같은 서비스를 통해서도 뉴스를 소비하고 있다”며 “인스타그램이 지원하는 기능인 ‘스토리(특정 팔로워에게 24시간만 노출하는 사진·영상)’와 ‘IGTV(긴 영상)’가 (전체 온라인 뉴스 영상 소비 비율의) 3분의 1이 넘었는데 이는 지난 몇 년간의 언론 동향 중 특히 큰 변화”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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